정신건강 칼럼

우울의 여러 얼굴

작성자
purecore
작성일
2023-10-13 12:52
조회
292

우울의 여러 얼굴

  한의원이라는 곳은 사람들에게 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곳과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는 곳의 중간 쯤 되어서 인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아픔을 갖고 몸의 문제로 치료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당연히 우울증은 이러한 환자 분들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몸이 아파서 우울이 오기도 하고, 우울이 몸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우울증이 어떤 것인지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겁니다. 의학적 정의를 살펴본다면, “지속적인 우울감과 활동력 저하를 특징으로 하는 상태의 지속과 반복”입니다. 그래서 우울증 상태에서는 평소 하던 역할과 일을 수행하는 것이 무척 어려워집니다. 평소 집안 일을 무난히 돌보던 주부가 청소나 설겆이를 방치하게 된다든지, 학생인 자녀가 공부하는 것이나 학교에 가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는 것이 보인다면, 단지 게으름의 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라 심리적 무력감이나 좌절감에 기인한 우울증이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심각한 우울증의 경우 그 개인이 겪는 주관적인 고통은 사실 타인이 잘 알기가 힘듭니다.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아서 타인들이 그 사람이 우울에 시달리고 있음을 모르는 경우부터, 극심한 우울로 인해 가족 전체와 주위 사람들도 염려와 우울을 겪게 되는 경우까지 양상은 다양합니다.

  이렇게 우울증에 대한 내용을 다루다 보면 많은 분들이 우울증을 심리적인 유약함이나 문제로 여기고 감추려고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전체적인 정서로서의 우울은 다양한 이유와 차원, 깊이를 갖고 있으며, 인간의 성장과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우울을 바라보면 우울의 여러 얼굴이 드러납니다.

  첫째, 시간성에 따라서 생각해 봅시다.

먼저 일회성의 큰 사건이나 상실로 인해 오는 우울이 있습니다. 사고나 재해, 질병, 가족의 죽음, 이혼, 직업과 성취의 상실, 재산의 상실, 배신 등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발달 과정에서 반복된 상실과 버려짐의 경험으로 성격화된 우울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장과정에서 성격적으로 우울이 자리잡게 되면, 이후의 삶에서 어떤 사고나 상실을 겪을 때 잘 극복하거나 애도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될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우리 존재의 차원이나 영역에 따라서 우울을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먼저 ‘몸의 우울’이 있습니다. 마음이 취약하거나 방어적이어서 우울을 대처할 수 없는 상태일 때, 몸이 대신 우울을 겪고 심신증적 psychosomatic 으로 반응하며 아프게 됩니다. 몸의 통증이나 질병들 중 이런 이유로 인해 발생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정신의 우울은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입니다. 이는 관계와 삶의 다른 영역에서 경험하는 상실 loss 과 버려짐 abandonment 으로 인한 슬픔, 죄책감, 자신을 향한 분노와 수치심에서 기인합니다.

그리고 몸, 정신에 더해 더 깊은 차원으로 가면 영혼의 우울이 있습니다. 우리 깊은 내면의 참자기 True self 가 보내는 내적 신호로서의 우울,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신호로서의 우울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성정과 진심에 부합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우울, 삶의 진정한 의미나 가치가 발견되지 않고 공허하고 허무할 때 찾아오는—예로서, 중년에 찾아드는 우울이 해당됩니다.

  결론적으로 우울은 ‘우울증’이라는 질병이나 문제로만 여겨질 것이 아닙니다. 깊은 의미에서의 우울은 슬픔과 죄책감을 느낄수 있는 능력이자 상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물과 상황을 깊게 느끼고 책임을 갖는 능력과도 상관됩니다. 즉 우울은 우리 삶에 성숙의 중요한 지표가 되며 삶의 목적과 가치를 질문하고 추구하게 하는 주된 정서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울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함으로써, 우울이 진행될 때 보다 열린 마음으로 필요한 도움을 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Sujin Rhi OMD  EAMP, PsyA

8plus1healing.com

전체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21

성격과 체질에 관하여 1 - 외향성과 내향성

purecore | 2024.02.25 | 추천 0 | 조회 92
purecore 2024.02.25 0 92
20

우울의 여러 얼굴

purecore | 2023.10.13 | 추천 1 | 조회 292
purecore 2023.10.13 1 292
19

코너스톤 무료 정신건강 프로그램

purecore | 2023.06.05 | 추천 0 | 조회 388
purecore 2023.06.05 0 388
18

화: 건강한 공격성에서 분노 장애에 이르기까지

purecore | 2023.06.04 | 추천 0 | 조회 373
purecore 2023.06.04 0 373
17

정신 건강 세미나 - 이민 가정의 정신 건강 3/11 10:30

purecore | 2023.02.24 | 추천 0 | 조회 340
purecore 2023.02.24 0 340
16

이민 가정이 겪는 심리적 위기와 기회, 그리고 Emotional Home

purecore | 2023.02.20 | 추천 0 | 조회 396
purecore 2023.02.20 0 396
15

애착과 심리치료

purecore | 2022.12.11 | 추천 0 | 조회 451
purecore 2022.12.11 0 451
14

학교 내 총격 사건, 그리고 미국이 겪고 있는 폭력성과 공포

purecore | 2022.09.19 | 추천 0 | 조회 635
purecore 2022.09.19 0 635
13

ADD에 관한 생각

purecore | 2022.04.25 | 추천 0 | 조회 521
purecore 2022.04.25 0 521
12

병리적 자기애와 악 Pathological Narcissism & Evil

purecore | 2021.11.02 | 추천 0 | 조회 623
purecore 2021.11.02 0 623
11

아이들의 트라우마Trauma 와 꿈의 이미지

purecore | 2021.04.23 | 추천 0 | 조회 509
purecore 2021.04.23 0 509
10

내향성과 은둔형 외톨이, 그리고 분열성 성격Schizoid Personality

purecore | 2021.02.01 | 추천 0 | 조회 825
purecore 2021.02.01 0 825
9

정신증 Psychosis 이란

purecore | 2020.10.30 | 추천 0 | 조회 492
purecore 2020.10.30 0 492
8

자폐증에 대하여

purecore | 2020.09.28 | 추천 0 | 조회 642
purecore 2020.09.28 0 642
7

진실로 살아있다는 것과 참 자기 True Self

purecore | 2020.08.09 | 추천 0 | 조회 527
purecore 2020.08.09 0 527
6

강박충동장애

purecore | 2020.07.08 | 추천 0 | 조회 633
purecore 2020.07.08 0 633
5

공황장애: 사례 분석

purecore | 2020.06.15 | 추천 0 | 조회 700
purecore 2020.06.15 0 700
4

공황장애 및 강박장애: 양상과 원인

purecore | 2020.05.31 | 추천 0 | 조회 645
purecore 2020.05.31 0 645
3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자신도 돌본다는 것

purecore | 2020.05.15 | 추천 0 | 조회 566
purecore 2020.05.15 0 566
2

감정의 전염성과 충동성

purecore | 2020.05.04 | 추천 0 | 조회 512
purecore 2020.05.04 0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