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식 속에 감추어진 화두의 비밀 15. 방생(放生)
방생(放生)은 강이나 호수 혹은 들이나 산에서 잡은 물고기와 새들 그리고 짐승들을 놓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방생은 어부나 낚시꾼들 혹은 사냥꾼들에게 잡혀서 죽어가는 물고기나 들짐승 혹은 새들을 돈을 주고 사가지고 강이나 호수 그리고 들이나 산에 놓아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항 속이나 새장 혹은 짐승들의 우리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물고기나 새나 짐승들을 놓아주면 그 선업(善業)으로 복을 받아 이생에서 행복하게 잘 살수있고 내생(來生)에도 좋은 환경이나 극락(極樂)에 태어난다는 소망 때문에 방생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찰(寺刹)에서 스님들이 방생을 년중 행사로 봄, 가을로 신도(信徒)들과 함께 구입한 물고기들을 놓아 주려고 버스를 대절(貸切)하여 방생하러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 틀 속에 갇혀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은 좋은 일이며 선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불자들은 누구나 한 두 번은 방생을 한 경험이 있으며 지금도 방생을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방생을 하여 복을 받아 운수(運輸)가 대통(大通)하고 만사(萬事)가 형통(亨通)하다면 그리고 방생을 한 선업(善業)으로 죽어서도 극락(極樂)을 갈 수 있다면 어느 누구나 방생(放生)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물고기나 금수(禽獸)와 같은 짐승들을 방생한다 해서 복을 받고 극락(極樂)을 간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불자들은 방생을 하기 전에 먼저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방생은 어떤 뜻이며 무엇을 방생하라고 가르쳐주셨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경(佛經)을 보면 부처님께서 살생(殺生)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스님들이나 불자들 중에 지금도 모기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자들이 이제는 산목숨을 죽이지 않는 것은 물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자비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며 선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하신 방생(放生)은 지금 불자들이 행하고 있는 방생과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손수 행하시며 불자들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진정한 방생(放生)은 어떤 뜻이며 무엇을 방생하셨는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불경(佛經)을 보면 부처님께서 물고기나 짐승을 놓아주는 방생을 하신 것이 아니라 물고기나 짐승의 상태에 있는 무명(無明)의 중생들을 제도(濟度)하여 방생(放生)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은 물고기나 짐승들을 방생한 것이 아니라 지옥계(地獄界)에서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무명(無明)의 중생들을 제도하고 살려서 부처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은 지옥계에서 죽어가는 중생들을 아귀계(餓鬼界)로 방생하고 아귀계에서 머물고 있는 중생들은 축생계(畜生界)로 방생하고 축생계에 있는 중생들은 수라계(修羅界)로 방생하고 수라계에 있는 중생들은 인간계(人間界)로 방생하고 인간계에 있는 중생들을 천상계(天上界)로 방생하여 부처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불자들은 물고기나 짐승들만 방생을 하여 복만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행하신 방생에 따라 지옥계에서 고통 받고 있는 무명의 중생들을 깨우쳐서 아귀계로 방생하고 아귀계에 있는 아귀들은 축생계로 방생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통해서 지옥계에 있는 중생이 지옥계를 벗어나려면 보시행(布施行)을 해야 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지옥계에 있는 중생들은 미물(微物)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귀계의 아귀나 축생계에 있는 축생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지옥계에서 아귀계로 스스로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귀계에 있는 중생들은 지옥계에 갇혀서 죽어가는 중생들을 찾아가 아귀계로 방생(放生)해야 합니다. 이렇게 아귀계에 머물고 있는 아귀들이 지옥계에 있는 중생들을 방생하는 일을 계속한다면 아귀들이 아귀계를 벗어나 축생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쳐주신 방생의 진정한 뜻을 모르기 때문에 시장에서 물고기나 새들을 사서 놓아주는 방생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진정한 방생을 알았다면 이제 부터라도 올바른 방생(放生)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불자들이 행해야 할 방생은 불교의 교리나 제도(制度)의 틀 속에 갇혀서 종노릇하고 있는 중생들과 부처님께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운수대통(運輸大通) 만사형통(萬事亨通)만 찾다가 죽어가는 중생들을 깨우쳐 구원하는 방생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방생은 스님들이 먼저 알고 불자들을 올바로 가르쳐서 삼독(三毒)인 탐(貪)진(瞋)치(癡)로 인해서 죽어가는 중생들을 구원하여 살리는 방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방생은 제도(制度)의 틀 속이나 기복(祈福) 속에서 욕심으로 죽어가는 중생들을 구원하여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계에 살고 있는 중생은 보시(布施)를 행하여 지옥계에서 나와야 하며 지옥계에서 나온 아귀들은 지옥계에 있는 중생들을 구원하여 아귀계로 방생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귀계에 있는 중생들이 축생계로 나아가 축생(畜生)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축생계에 있는 중생이 아귀계에 있는 아귀들을 방생하면 수라계로 들어가게 되고 수라계에 있는 중생들이 축생들을 방생하면 인간계로 들어가 인간이 되는 것이며 인간계에 있는 인간들이 수라계의 중생을 방생하면 천상계에 올라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생은 불자들에게 아주 중요하며 누구나 행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불교의 교리(敎理)나 제도(制度)의 틀속에서 벗어나 부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방생(放生)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불자들이 불교의 교리나 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또한 기복신앙(祈福信仰)에 치우쳐 진리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지금도 불자들이 교리나 제도(制度)의 틀 속에서 벗어나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육바라밀(六波羅蜜)을 통해서 해탈(解脫)하여 부처가 되길 원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