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발을 씻어드린 일이 있는가?
아버지의 발을 씻어드린 일이 있는가?
.
아주 오래 전 60년 대 어느 집에 부모가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의 교육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고 아들을 키웠더니
이 아들이 착하고 공부도 잘하여 명문 대학을 나오게 되어
사회에 진출을 하려고 어느 대 기업에 입사시험을 쳤다.
좋은 결과가 나와 면접시험 단계에 들어갔다.
1차 면접에도 합격을 하고 이제 마지막 면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면접은 이 회사의 사장이 직접 하게 되어 있었다.
면접장에서
사장님 : “자넨 시험 성적이 아주 좋군. 그런데 자넨 아버님이 계시는가?”
응시자 : “예 제가 모시고 있습니다.”
사장님 : “모시고 있다고? 그래 혹 아버님 발을 씻어드린 일이 있는가?”
응시자 : 멍하게 있다가,,, “아니요. 아직은 요..”
사장님 : “그럼 발을 씻어드릴 수 있겠는가?”
응시자 : “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장님 : “그럼 오늘 집에 가서 아버님 발을 씻어드리고 다시 오게나.”
==
그 다음 주 약속한 날짜에 다시 나온 학생에게.
사장님 : “그래 발을 씻어 드렸는가?”
응시자 : “예...” 그리곤 말은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업드려 흐느끼기 시작한다.
(평생 처음 아버지에게 발을 씻겨드리려고 하니 아버지가 싫다고 하셔서
면접시험에서 있은 얘길 드리고 발을 씻기 시작을 하였다.
이건 사람의 발이라고 보기 힘이 덜 정도로 상처투성이에 덕지덕지 붙은
굳은 살은 짐승의 발이나 다름이 없음을 느끼고 나를 키우기 위해 이렇게
고생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아버지의 발을 잡고 한 참을 울었다.)
사장님 : “그래 씻겨 드리고 나니 마음이 어떤가?”
응시자 : “이제야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든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장님, 저를 깨우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불효자가 어떻게 이 큰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하니..
사장님 : “그럼 자네 그런 자세라면 우리 회사의 고객을 자네의 아버지 어머니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을 해 주게. 합격일세,, 내일부터 나오게..”
--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1950년대의 구멍가게 잡 인터뷰?
아마도 너싱홈 이나 caregiver일이라면 몰라도...
그래요 이 글은 60년 대 후반의 실화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올린 뜻은
시대를 무시하고 누구나 남자라면 아버지가 있(었)을 것이고
자식이 있다면 누구나 부모는 자식을 위해 이렇게 헌신적으로 했는지 자신을 되 묻고
또한 아버지의 입장에선 언제나 자식을 위한 길이라면 모든 걸 감내한다는 그 진리를
이 글로 인해 나 자신이 얼마나 그렇게 하였는지 깨우쳐 보자는 글이랍니다.
과연 댓글 주신 분은 아버지의 발을 닦아 드린 일이 있습니까?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자녀들로부터 발씻김을 받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과연 얼마나 많은 현대사회 자녀들이 자신의 부모의 고생을 '체득하기 위해' 발을 씻기고 있을까요? 부모님이 고생했다는 사실을 꼭 어떤 이벤트를 통해 실체적 물증을 확인해야 하는 것일까요? 양육비를 반환하라며 자녀의 월급에 차압을 거는 현대사회입니다. 60년도 넘은 예화를 끌고와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에 훈수라니. 좀 더 발전적이고 설득력 있는 예화를 다음에는 기대해 봅니다. 자꾸 '효'를 강조하시는 걸 역설적으로 유추해 보면, 그 '효'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불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지 않으신가 살짝 걱정됩니다.
아버지가 신체적으로 불구가 아닌 이상 발을 씻겨드릴 이유 전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