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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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 이야기를 하는 순간

에세이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09-08 22:21
조회
433
술집에는 아름다움이 흐른다. 대부분의 술집이 그랬다. 들어가자마자 밖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 듯 그곳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름답다. 이런 상투적인 표현을 굳이 쓸 만큼.

그곳의 노란 조명이, 술잔이, 그리고 안주가 모두 다 몹시 아름다웠다. 나는 그곳에서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와 술을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교 선배, 후배 그리고 동기들. 함께 일을 했던 동료나 소개팅을 한 사람... 가릴 것 없이 그들은 모두 재밌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표정과 흐름, 그리고 눈빛, 뭐라 이야기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분위기.   그 모든 것들을 보는 게 즐거웠다. 그래서 술집 안에서의 시간이 마치 신선놀음하듯이 빨리 흘러갔다. 그러니까 어떤 날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술집이었는데 나오니 해가 떠있었다.

그렇게 낭비하는 시간들을 보내야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래도 휴대폰 파는 일을 9시 반까지 했기에 망정이지 오후 4시에 끝나는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오후 4시부터 술집으로 갔을 것이다.  술집은 아름답고 폰 가게 일은 나를 지켜주었다.  그 두 가지를 돌려가며 그래도 하루하루를 잘 넘겼다.

얼마 전 내게 인터뷰가 있었다. 그런 인터뷰가 세 번 정도 있었는데 한 번은 인터뷰라고 하긴 좀 그렇고 여러 명에서 질문하고 대답하는 팟캐스트였다.  그리고 얼마 전 인터뷰는 내가 아직 친하지는 않은 분과 하는 인터뷰였다. 나는 그와 친해지기 위해 일단 얼굴을, 옆모습을 계속 빤히 보았다. 익숙해져야, 진짜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인터뷰어의 눈빛, 몸짓 이런 것들을 보며 예전의 그 술집들이 떠올랐다. 그런 식의 대화. 그래. 많이 해봤지.

내가 나를 보여주는 대화들. 상대방 말을 경청하고 때에 따라 의견을 말하는 그런 대화.

그 생각이 떠오르자 갑자기 그곳의 모든 것들이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나를 쉽게 드러낼 수 있었다.

아파트를 팔러 갔다가 경기도에서 하나도 못 판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정말 못한 일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3년이나 했는데 계속 떨어진 것은 흔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영어만 3년을 했는데 영어점수가 65점이 넘지도 못한 건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머리가 나쁜 편이고 무엇 하나에 잘 집중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진짜 내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곳도 아름다움이 흘렀다.  세상에 무엇도 그렇게 통하게 되면 흐르기 마련이다. <무심한 듯 씩씩하게>에 나왔던  주인공이었던 노래방 도우미 자매, 키가 큰 할머니, 그리고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전 남자 친구.  거기에는 진짜가 있고 나는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예전처럼 술을 안 마신 지 5년이 되었고 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누군가에게  진심을 말하는 공간에서는 아름다움이 흐른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내가 어떤 모습이든.



이 북리뷰는 『무심한 듯 씩씩하게』의 저자 김필영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brunch.co.kr/@kpy70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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