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외 2개
뎀전6:6-10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성경은 “돈“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부족한 줄 모르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마음만 가질 수 있다면, 경건한 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여, 내가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돈“에 대하여 지나친 집착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한 생활이란, 겸손하고, 욕심 없이, 소박한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경건치 못한 생활이란, 사치스럽게, 욕심껏, 절제 없이 생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생활인지 판단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경건한 생활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 생각 합니다.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 우리가 죽을 때에 아무 것도 가지고 갈 것이 없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정확한 것임을 알면서도, 다른 말로 공수래공수거인 것을 알면서도, 재산이라는 것이 영원히 자기에게 기쁨을 줄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게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잘못된 마음에서 욕심이 발동을 하는 것인데, 그러나 그 욕심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자기를 곧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사람이 이런 쓸데없는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것을 자기합리화 해서 그것이 욕심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 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4-15)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악한 것들로 부터 시험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시험을 받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 간에 어려운 일이 발생해서 힘들어 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을 하기도 하며, 또는 사업이나 직장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시험에 빠지는 이유는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이라 성경은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생기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죄가 점점 커지게 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해 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시험에 들기 쉽고, 이 시험으로 말미암아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한 것의 근본이 되며, “돈“을 사모하는 자들은 미혹에 빠지게 되고, 결국에는 “돈“을 신처럼 숭배하게 되므로,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나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순전한 마음과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심은 자기를 찌르는 것이 되어, 결국멸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사람이“돈“ 때문에 어떻게 타락하고, 멸망에 이르는 지를 소상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돈“ 버는 목적이 남을 이롭게 하는 등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목적에 억매여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면, 결국 “돈“이 우상이 되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돈“을 가진 사람이 “돈“을 지배해야 하는 것인데, 거꾸로 사람이 “돈“의 지배를 받는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요, 결국 돈이 우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현재, 자기가 먹고 입는데 큰 부족함이 없다면, 그것이 족한 줄 알고 살면 되는 것이거늘, 더 맛있는 것, 더 좋은 옷, 더 좋은 자동차, 더 화려한 집도 사실 처음 가졌을 때뿐이지, 얼마 후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생각도 부질없는 자기 욕심이요,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거늘, 자손이 선친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잘 살지도 못하는 것이 대부분일 뿐더러, 설사 자식이 잘 산다 하더라도, 죽은 이후 자식이 잘 사는 것이 자기와 무슨 큰 상관이 있겠는가? 잘 살려고 애쓰다 보니, “돈“이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수단이 아닌 인생의 목표가 되고, 이 목표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과 올무에 들고,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져, 눈이 어두워져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멸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모습들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가 되는데, 우상중에는 물질숭배가 가장 큰 것입니다.
돈을 사모하는 자들은, 이미 마귀의 유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난 것이요, 많은 근심을 여러 사람들에게 주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눅12:16-21“한 부자가 그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 한자가 이와 같으리라.“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깨닫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소출이 풍성하여 재산이 늘어났을 때, 그 재산이 자기 것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는 다만 그 재산을 잠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죽고 사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절대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오늘밤 갑자기 내 영혼을 취하신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나의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 영혼을 언제든 부르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 내 영혼의 참주인 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상을 잠시 살고 있을 뿐이지, 내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철저히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망각하거나 부인하니 욕심이 생기고, 결국 그 욕심은 우리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돈은 결코 내 것이 아니며 절대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돈의 의미를 잘 알아서, 잘 활용하면 인생은 매우 의미 있고, 풍요로운 삶이 되겠지만, 돈이 목적이 되어, 오히려 나를 지배하려 한다면, 결국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어, 자기의 영혼을 망치고, 추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부활 때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
눅20:34-36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부활”이 무엇이기에“부활”을 받은 자들은 이 세상의 제도와는 달리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며 다시 죽을 수도 없이 천사와 동등하다고 했는가? 그리고 왜 결혼제도가 없는 부활의 때를 진리의 말씀이라고 하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듯이 이 세상에서는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는데 남녀는 서로 환상을 갖고 결혼제도를 반기며 시작을 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환상은 곧 사라지고 아이를 낳아 양육해야 하는 일과 서로에 대해 짐 지며 구속당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이런 일 저런 일 근심걱정 등으로 말미암아 한번이라도 한평생을 살면서 남녀 간에 이혼을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남여 결혼이란, 환상으로 시작해서 고생고생하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파멸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의 결혼제도를 일격에 말소시키시고 새로운 결혼제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죽을 수도 없이 천사와 동등" 이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천국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없이, 그 대신에 죽을 수 없는 영생하는 천사와 동등하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이 한 몸이 되는 새로운 결혼제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간육체는 그 수명을 다하면 죽는 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신“영“으로 계십니다. 수명에 제한을 받는 인간육체에 불멸의“하나님“이 들어와서 한 몸이 되어주면 인간이 곧”영생”하는 하나님과 동등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새로운 결혼제도로 인하여 인간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인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달라" 고 하셨는데 하늘에서 이룬 것은 이미 하늘에서”영생”하는 몸을 뜻하고, 그처럼 땅에서도”영생”을 이루어 달라는 것은 하늘들을 땅으로 유치해서 인간육체를”영생”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렇게“하나님“의 생명으로”영생”하게 되는 천국의 인간육체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일까를 상상해 보았는가? 욥기에서는 부활의 때를 일컬어 소년의 때를 회복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소년의 때는 이팔청춘으로 누구라도 동남동녀들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빛만큼이나 신비스럽고 찬란하고 싱싱하고 유연하게 갓 피어난 고등학생들의 연령대에서 영생하게 될 터인데, 지금 나이 많은 고령이라고 혹은 병약하다고 혹은 인물이 없고 몸매가 좋지 않다고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즉 인간이 십대 청춘의 연령으로 회복되어 영생하는“남여“가 하나님과 같은“신“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신“은”남자 여자“가 없습니다. 그냥“신“일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간이 천사와 동등하다고 하셨듯이 그“신“이”남여“인간 속에 들어와 한 몸이 되면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고 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멍에를 매지 않고 얼마든지 환상적이어도 충분히 좋은 얼마든지 낭만적이어도 충분히 좋은 멋진 자유교제만 존재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지으신 삼라만상 자연을 아름답다 하는가?
너무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롭고 맑고 순수하고 포근해서 그 품에 아주 안기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신“적 존재들은 얼마나 뛰어나게 찬란하고 아름다울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부활”의 때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파격적이란 말인가?”부활”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부활”이란 죽은 자가 무덤에서 살아나오는 것이”부활”인가? 물론 예수님은 죽으신지 삼일 만에 문자적 무덤에서”부활”하셨습니다. 나사로도 죽었다가 나흘 만에 살아났습니다. 성경기록은 그리고 그 당시의 사건들은 문자적 성경기록 그대로 죽음도 생물학적 죽음이요,”부활”도 그 죽음에서 살아나오는 육적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경의 육적 기록들은 모두 오늘날에 영적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예언이 되기 때문에“비유비사“가 되며 상징이 되는”부활”인 것입니다.
사실적으로 죽고 사실적으로”부활”을 했으나 그것은 오늘날에 영적부활로 이루어질 일을 육적으로 성경을 보여주고 육적으로 기록을 했을 뿐이기 때문에 오늘날 그 예언 성취에 직면해서는 영적죽음과 영적부활로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죽음이요, 영적부활이기 때문에 오늘날 살아 있는 우리에게 어떠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즉 영적죽음과 영적부활을 요구하는 기록인 것입니다.”부활”이란 반드시 죽음을 전제합니다,“혼“적인 존재가 죽어야”영”적인 존재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말하고자 한다면 먼저 죽음을 앞세우게 되는데“혼“의 죽음은 과거 거짓된 기독교에서 목사들에게 받은 거짓된”비 진리신학“의 믿음에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오늘날의 진리의 새 말씀으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잘못된 믿음으로 꽉 차 있으면 오늘의 새 진리가 도무지 들어갈 틈이 없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새 진리는 누가 가져오는가? 요1:1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오늘날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요1:14)를 입고 오신 오늘날“실존예수님”만이 가져오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거짓된 자신의 성전을 모두 헐어버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건축해야 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면 예수께서“3일“ 만에 다시 짖겠다고 하십니다, 요2:19-20 예수께서는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46년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라 내가 3일 만에 다시 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잘못된 말씀으로 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면 예수께서”3일“ 만에 다시 짖는다고”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3일“이라는 뜻은”애급, 광야, 가나안“을”3일“길이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님도”3일“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성경에 기록된 유대인의 예수를 믿어 자신 안에 잘못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고 오늘날의”산자 실존예수”의 말씀을 영접해서 다시”3일“길을 가야 천국에 입성하는 것입니다 막 2:22 새 포도주(진리)를 낡은 가죽 부대(육체)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이 말씀은“비 진리신학“의 말씀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새 양식인 진리의 말씀을 기존의 신앙 위에 덧붙여 말씀을 먹는다면 옛 것도 버리고 새것도 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잘못지은 옛 신앙을 철저하게 헐어버리고”새 술(진리)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불 심판이란 무엇인가?
“불 심판“은 믿는 자에게나 불신자에게 다 같이 임합니다. 먼저 이“불 심판“이란 무엇인가? 이“불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 그림자를 남겨두어 우리로 교훈을 삼게 하시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소돔과 고모라의“불 심판“입니다. 물로 심판을 받은 노아시대에도 성적타락이 원인이 되었는데 소돔 고모라도 성적타락이 원인이 되어 최초의“불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둘의 양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분별함으로 오늘날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노아 때의 성적타락은 음양의 도리 안에서 이루어진 무도덕한 혼음이 그 원인이고 소돔과 고모라는 음양의 도리를 벗어난 동성 간의 괴이한 색이 그 타락의 원인이 됩니다.
노아 때에는 음양의 순리 안에서 역천이었다면 소돔 고모라는 음양의 도리를 거 스리는 역리로써 역천이 되는 것입니다. 롬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이 말씀 속에는 소돔 고모라의 멸망의 원인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유다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 원인을 밝히고 있습니다. 유 1:6-7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소돔 고모라의 다른 색이 사단마귀의 사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와 이웃 도시들이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음란을 행했는데 저희란 자기의 본분을 잃고 그 본분에 위치를 떠난 천사들인데 이들의 행위가 워낙 중하므로 영원한 결박을 지워 흑암에 가두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동성애의 성행위는 타락한 천사들이 인간에게 알려준 것으로 최초로 성도착이 됩니다. 노아때“물 심판“을 받은 이들에게는 부활의 복음으로 다시 사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동성애의 성도착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어 둘째 사망의“불 심판“을 받게 하였습니다, 이들의 음란을 행한 소돔 고모라의 인간들은 영원“불 심판“으로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는 것으로써 후대의 거울이 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종말의 때에도 노아와 소돔 고모라에서와 같은 음란이 재연될 것입니다. 오늘날현대의 사람들은 일정한 가치를 가지는 상품입니다. 여자나 남자 할 것 없이 성적 능력에 따른 상품으로써 가치가 달라집니다. 어느 시대에나 물질적 풍요는 윤리 도덕적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성적 타락이 그 풍요에 비례합니다. 유교적 전통문화로 인하여 동방의 예의지국이라는 한국도 어린아이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성문화에 노출되어 성 무도덕의 사회가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음란은 종교적 음란과 오늘날기독교의 비 진리가 만연함으로 우상숭배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상을 앞에 두고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만이 우상숭배 인줄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교인들을 대려다 간증이랍시고 하나님을 잘 믿어 마치 성공한 것처럼 교인들의 마음에 축복, 축복의 불을 지핍니다. 세상에는 온갖 전문가들이 있어 내일 미래를 예측합니다, 이것이 모두 기독교적 음란 행위입니다 성경으로 보면 왕들 옆에 복술 점쟁이들이 미래를 예측하듯 이들은 신종 복술 점쟁이들에 해당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이 온통 우상이 가득하여 음란을 행하여도 그것이 음행인지 알지 못합니다. 현대는 온갖 미디어 매체나 지구와 인류 미래에 대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미래의 시간 속에 다가오고 있는 종말에 대하여 위기의식을 갖고 가고 있는 불안한 실존들입니다. “불 심판“하는 심판의 의미는 이 지구가 사라지는 의미의 심판이 아닙니다.
선사시대의 종말이 노아의“물 심판“이었고 그 심판은 역사시대를 여는 새 세상이었듯이“불 심판“은 역사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며 동시에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영적인 신성한 인류들의 새 세계가 열리는 아침을 예고하는 심판이 됩니다. 사단마귀와 악인들에게는 절망적인 종말이지만 부활로 신적 존재로 약속받은 이들에게는 희망이 넘치는 종말입니다. 끝머리가 되는 말세는 낡은 역사시대의 끝이며 새로운 영의시대를 여는 말세가 앞으로 도래하는 말세의 성격입니다. 노아홍수로 침몰한 영혼에게는 부활의 복음이 증거 될 기회가 있었지만“불 심판“을 받은 자들에게는 다시 부활의 복음이 증거 되는 기회가 없으므로 둘째 사망의 심판 이라고 합니다.
계 20:14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 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 우더라 이들은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찾지 아니한 자들이므로 다시 구원이 없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하고 모든 인간에게 십자가 부활의 도가 증거 된 후에“불 심판“은 도래하므로 누구든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불은 핵폭탄 같은 인공적인 불이 아닙니다. 계시록에는 여러 종류의 불들이 나오지만 참 불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히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신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이 불은 악인을 멸망시키는 능력의 불인 동시에 선인을 정금으로 연단하는 신비의 불입니다.
참 불은 모든 거짓과 진리 아닌 것을 태우므로 참과 진리만이 남게 합니다. 참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생명 자체이십니다. “물 심판“은 존재자체를 침몰시켜 다시 부활할 수 있으므로 침례의 근원이 되지만“불 심판“은 존재의 근원을 완전히 살라 소멸시키는 심판이므로 두렵고 무서운 영원한 심판인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들이 받는“불 심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이시며 불꽃같은 존재이신데 주의 부활을 믿는 참 성도들은 불이신 하나님의 연단의 불을 통과하지 못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풀무 속에서 정금과 같이 불꽃을 통과하여 순수한 것만 남은 존재가 되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불 심판“이 임할 때 그의 공력이 불에 타면 그 믿음이 거짓인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고전 3:12-15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 말씀은 구원이 불을 통과하는 구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은 존재 자체를 없애기도 하고 순수하게 정화시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성령의 불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불 가운데 소멸하지 아니하는 것은 오직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뿐입니다. 이 성령의 불은 우리의 온몸을 뜨겁게 하여 체질을 녹이고 모든 육체의 질병을 태우기도 합니다,
마음속의 감정과 거짓 위선을 태우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 남게 합니다. 이 성령의 불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체 가운데 하나님의 불인 성령을 주셔서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마음과 생각과 이론과 사상과 비 진리를 태우므로 소멸하여 영원한 것 생명만이 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불의 심판이 올 때에 거짓 믿음을 가진 자들은 불을 통과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며 참 믿음을 가진 참 성도는 정금과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성령의 불은 위선과 욕망으로 가득 찬 감정을 정화시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히게 합니다. 감정대로, 기분대로 사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여 돌 감람 열매와 악한 무화과 열매를 맺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시라. 하나님은 거짓을 소멸하여 참 믿음의 정금을 원하십니다. 그 연단의 불은 풀무불이 됩니다.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하나님이 연단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인친 영생의 믿음은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풀무 불에 타지 않고 정금이 될 것입니다. 이 부활 영생의 믿음이 아닌 모든 의식은 태워질 것이며 이 믿음이 아닌 의식으로 행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모든 것의 참과 거짓이 드러날 것입니다. 벧후 3:10-13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진리의 길을 가는 자는 이 불로 죄의 의식을 태워서 오직 영원한 생명에 대한 부활에 믿음만 정금으로 남게 해야 합니다. 이“불 심판“을 현재 받고 있으며 이제 온 세상을 소멸하시고 새로운 세상을 여실 때에 소멸하지 아니하고 빛나는 존재가 되어 그 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벧후 3: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 불입니다. 진리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는 정금처럼 연단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불이 됩니다. 소돔 고모라도 하늘에서 유황과 불비가 내려 멸망을 받았습니다. 소돔 고모라는 장차 나타날 말세의 심판의 그림자입니다. 끝날“불 심판“은 말씀 심판인 동시에 죄와 악을 소멸하는“불 심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성령의 풀무 불안에서 믿음의 단련을 받고 있는 자는 이 세상의“불 심판“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