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암 못에 가서 씻으라,
요9:6-13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 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 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 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저희가 전에 소경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모형과 그림자는 실제를 비추는 허상과 그로인한 형식의 꾸밈인 것이요 실상을 나타내는 의식의 바램인 것이니 말씀과 육신으로 빚어져 진흙이 되어 지지 않는다면 실로 암 못으로 씻음을 받았던 소경의 외침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바리새인들의 그 병들었음과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가이샤의 형상들이 되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떠한 병이라도 고침을 주는 자비의 못이란 이름의 베데스다 연못과 소경의 눈을 띄워 주는 실로 암 못의 치료하심은 이러한 실상들로 실제 나음과 낳음을 주는 말씀의 존재들을 비유와 비사로 기록된 성경의 감춰지심인 것이며 침과 흙으로 빚어진 진흙의 참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하기에 영적 소경들의 눈을 띄워주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사도라 번역된 아포스톨로스들이란 바로 물을 동하여 병을 치료하는 그 구원자의 반차의 자손들인 것인바 하늘의 사역만을 감당하고 오직 영적 소경과 병든 자들의 마음속에 말씀만을 부어주는 보내심의 존재들은 영원토록 이 낳음을 받고 낳음을 주는 십자가의 도만을 행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눈을 뜨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여 눈을 띄워주는 이들의 사역을 원하지도 알지도 못하기에 눈을 뜨고자 간절히 바라는 소경의 애통함을 모르고 건강한 음녀의 자손들이 되어버린 이 삯군의 후손들은 오늘도 가려진 눈과 썩어 가는 문둥병으로 죽어 가는 자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바로 이렇듯 육신을 입었다는 것은 눈을 뜨지 못하여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무지의 죄인들이라는 것이니 모든 것이 스러지는 이 해 아래의 세상에는 뚜렷한 목적, 하나님의 뜻을 알아 말씀으로 영적 거듭남을 입어야하는 신앙의 그 생활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여 눈을 띄워주는 참 의사가 앞에 있더라도 병자라는 것을 아는 믿음과 실로 암에 가서 씻으면 낫는다는 것을 아는 믿음이 없다면 절대 치료받을 수 없음인 것입니다
눈을 뜨고 띄우는 그 사역보다는 오직 육신의 모형과 그림자인 날짜로서의 안식일, 그 날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 만을 따지는 바리새인들처럼 영원히 죽을 자들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실로암에 가서 내가 눈을 씻고 보나 낫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 서 온 자가 아니라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