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상이 비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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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세계100회 강연(90)
과테말라시티 Guatemala City
이 ‘붉다’, ‘푸르다’하는 것은 나의 안경 색깔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이 안경 색깔을 ‘업식’이라고 합니다. 인도말로는 ‘카르마’라고 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사물을 인식하는 습관, ’사물을 인식하는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나는 인식하는 틀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달라요. 기독교인과 불교인은 사물을 인식하는 틀이 달라요. 바탕화면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은 인식하는 틀이 달라요. 한국 사람은 안중근을 어떻게 인식합니까, 독립운동가, 애국자로 인식하죠. 그런데 똑같은 사건을 일본 사람의 안경으로 보면 테러리스트로 보이는 것입니다.
아내 입장에서 남편을 보면 진짜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는데 남자는 “내가 뭘 했는데?” 해요. “아니, 너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나?” 하면 “내가 뭘 어쨌는데?” 합니다. 남자가 부인을 볼 때에는 너무 잔소리가 많다고 느끼고, 여자가 남자를 볼 때에는 아무리 얘기해도 말귀를 못 알아듣습니다. 한 쪽에서는 “아니, 그 빨간 것을 빨갛다고 딱 보면 알지, 그게 파랗다니 말이 되나?”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저게 미쳤나, 왜 이걸 빨갛다고 하지?’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안경을 벗어버리면 “아, 빨간 게 아니네?”, “아, 파란 게 아니네?”하고 금방 해결되어버려요. “아니네” 하면 금방 해결이 됩니다. “아니네”하는 것이 “제상이 비상이네” 하는 것입니다. “제상이 비상이네” 하는 것이 즉 부처의 길이고 깨달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안경을 다 벗어야 될까요? 아닙니다. 껴도 괜찮아요. 하얗게 보여야 할까요? 아니에요. 빨갛게 보여도 괜찮습니다. 내가 빨갛게 보일 때 ‘빨갛다’고 하지 말고 ‘내 눈에 빨갛게 보인다’ 라고 알면 돼요. “어, 그래? 내 눈에는 파랗게 보인다” 하면 “어떻게 된거야?” 하고 연구가 됩니다. 그래서 견해가 달라도 갈등이 될 수 없어요. 그러면 안경을 바꿔서 껴본다던지 하면 ‘어, 그래,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다’, ‘아, 남편 입장에서는 저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아, 우리 남편은 어릴 때 저렇게 자라서 저렇게 생각을 하는구나’ 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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