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교회

초대교회 2017.02.16 05:59 조회 수 : 393

 

      집 교회 

https://kseattle.com/index.php?mid=churchfree&search_target=user_id&search_keyword=esus&page=1&document_srl=909581

다음은 <중국 교회>를 6개월간 방문하고 돌아온 어떤 분의 ‘양심적 보고서’를 펀 글의 일부로써

 “무엇이, 어떤 것이 성경적 교회인가?”에 대한

자문자답을 위한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대개의 동양권 나라들은 ‘로마 카톨릭의 사도권 계승과 로마 카톨릭의 교리’를 주축으로 포교 활동이 되고,

뒤이어 개신교도 동일한 패턴으로 포교되어져 왔다. 


<퍼온 글 일부> 한국 교회는 서방교회 선교의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방 개신교에서 선교사들을 한국에 파송하여 학교들을 세우고, 병원들을 짓는 등 사회사업을 병행하면서,

한편으론 신학교들을 세워서 목사들을 배출하여 개신교회들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선교를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 각 교단들과 교단 산하의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경우도 처음에는 서방교회의 선교 무대가 되었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기 직전까지

약 이삼백년 동안 개신교 각 교단들은 앞 다투어 중국에 선교사들을 파송하였고,

각종 선교단체들이 중국에 대한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중국 대륙의 공산화 이후 반세기 동안 중국은 기독교의 황무지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서방 기독교의 착각이었습니다. 
불과 반세기만에 서방 기독교의 영향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중국 대륙에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의 장막 속에서 자생적인 지하교회들이 가정교회 형태로 하나둘씩 생겨났고,

조용히 세포가 번식하듯이 증식하더니, 중국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가서 1980년대에 이미 그 수가

 오천여만명에 달하였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교회사의 모든 부흥사건을 통틀어 보아도, 불과 50여 년 만에 오천만명 이상의 지하교회로

성장한 사건은 실로 전무후무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 지난 오늘날, 비록 비공식적인 통계이긴 하지만,

그 수가 무려 일억오천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개신교 교단으로 알려진 미국의 남침례회 교단도 불과 천오백여만명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 교회는 반세기만에 그 열 배에 해당하는 일억오천 만 명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교회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서방교회의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다 보니,

중국교회를 무시하는 우월적 교만이 보다 큰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1970년대 말부터 중국교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 때 극동방송국에서

중국 교회에 대한 자료들을 번역하는 일도 하였는데,

오늘날까지 중국의 가정교회(혹은 집교회, the house churches)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보아도

극소수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가령 미국 남침례회에서 나온 자료 중에서 중국의 가정교회 운동을 다루는 자료도 보았지만,

내용이 피상적이고 치우친 평가여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중국에서 배운 교훈 중 하나는 중국교회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평가가 크게 왜곡되어 있는데다가,

지나칠 정도로 피상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서방교회 선교의 결실인데 반해서, 
중국교회는 인간의 인위적인 선교활동이 철저히 배제 된 채, 
순수하게 자생적으로 성장한 교회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가령 중국교회는 신학교도 없고 목사제도도 없이 소위 평신도들에 의해 성장한 교회 모델이며,

그것도 혹심한 핍박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한 생동력 넘치는 교회로서,

그 수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억오천만명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순수성과 성경에 가까운 모델은 서방교회와 한국교회를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차라리 선교를 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중국교회가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중국에 선교를 하겠다고 야단법석이지만, 중국교회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한국교회가 중국교회를 배워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할 것입니다. 

중국교회야말로, 서방교회의 영향이 철저히 배제된 모델이자, 인간의 인위적 선교활동이 전무한 상태에서,

다시 말하면, 진리의 영의 활동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인위적 요소들이 제거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하나님의 작품으로서의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교회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교회보다는 훨씬 순수하고

영적 수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는 사실입니다. 


======================================================== 

'집 교회' 혹은 '가정 교회'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교회> 모습은 철저히 “집 교회”이었다. 
오늘 날처럼 ‘영향력 행사의 장소’로 <큰 건물에 최소 수백에서 수만이 모이는 집단> 형태가 없는

“초대 교회”의 “집 교회”가 성경에 기록일 뿐이다. 

집 교회”의 장소는 <가정 집>이었으며, 그 모임의 수는 <가정 집>을 채울 수 있는 수에 한 했고,

모임의 형태는 결코 사도들이 전한 “기록한 말씀 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고전 4:6)을 지켜

인간의 인위적 교리가 전무한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세포가 번식하듯” 퍼져 나갔다.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집 교회”는 오늘 날의 ‘예배형태’처럼 “예배 순서지”대로 <종교의식>을 행하지도 않았고,

노래 몇 개하고, ‘성가대’라는 전문적 노래꾼들(entertainment 여흥 =餘興)도 없었으며, 광고 순서나,

목사생활비 혹은 건물 유지비를 위한 <돈 걷기>도 없었고,

목사 중심의 “one man-show”는 더더욱 없었다. 
목사가 ‘순서진행’하고, ‘대표기도’하고, ‘말씀 전’하고, ‘병 고치는 것’이나, ‘방언하는 것’도,

‘통역하는 것’도, 목사 혼자서 모두 다 한다. 
완전한 “one man-show”이며, “Entertainer”다.

entertainment=흥을 돋우려고 연예나 오락을 함) 

* “예배”의 주인, 주관은 “”이신 분이다. 

성경은 교회내의 역할을 분담하여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각각 그 때, 그 때 분담자가 바뀌는 형태를 취했다.

예를 들면 교회를 향한 방언하는 자와 이를 통역하는 자는 동일인이 아니었고,

성령의 나타남은 각 각 달리 나타내었다. 
입이 듣는 역할을 못하고, 팔로 걷는 자가 없듯이 코로 먹고, 발로 보는 일은 결코 없다. 

그들은 몸의 각각의 부분처럼 <예배 시>에 ‘성령의 인도함’대로

‘어떤 이는 방언’을, 어떤 이는 방언 통역함’을, ‘어떤 이는 예언’을, ‘어떤 이들은 시(詩)’을

‘어떤 이는 말씀’을, ‘어떤 이는 성령의 은사들’을 나타내었다. 

고전14:21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2084 헤테로글롯소스=외국어)하는 자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들(1100 글롯사)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1100 글롯사 )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고전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단수1100 글롯사)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1329 디엘메뉴오)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1328 디엘메뉴테스= 통역자= 해석자)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1) 찬송시, 2) 가르치는 말씀, 3) 계시, 4) 방언, 5) 통역함 

찬송시=5568 yalmov"{psal-mos'} : 프살모스 1)치기, 퉁기기 
'음악'의 일집, 즉 거룩한'송시'(육성, 하프 또는 다른 악기의 반주있는;'시편'), 시, 찬송시. a song of praise, a psalm; 


집 교회”는 많은 인원수가 아니었으며, 
집 교회”이어야만 예수를 핍박하려는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로마의 세력’

또는 ‘이방 종교’(=카톨릭)로부터 안전할 수 있고, 자생할 수 있었으며,

‘예수의 이름’이 넓게 퍼져 나갈 수 있었고, <지하교회>가 될 수 있었다. 

과거의 ‘초대교회’인 “집 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교회’ 곧 중국의 “집 교회”는

철저한 <지하교회>이었기에 공산당들도 잔멸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에 있는 교회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골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몬 1:2)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가루 서 말’과 ‘누룩’ 

(마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눅 13: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중국의 <지하교회>는 외부의 “성경적이 아닌 일반 모든 ‘교회’라는 그룹들”의 세력이

중국의 <지하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염려가 지나쳐 반대하고 있다. 

중국에 3년을 있다가 온 인터넷에서 만난 ‘김 폴’이란 분의 말을 빌리면(어제 1시간 35간 한국에 전화)

“중국의 지하교회는 한국의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포교활동하려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또한 한국의 선교사들은

다만 중국 내에 있는 조선족 교회를 상대로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 정도 이상의 일은

별로 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종교법”이 “타국인은 포교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으며,

이를 위반 했을 때 처벌(징역)이 되며, 위반이 적발되면 한국 선교사들이 돈으로 ‘공안원’을 매수하는

습성이 알려져 돈벌이하는 공안원이 되어 버린 상태이라 했다.

즉 설교를 하려면 ‘돈이 든다.’는 말이 된다. 웃지 못 할 일이다. 

“그러면 <지하교회>에 무엇을 도울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했더니, 
“선교사를 중국으로 보내지 않는 것이며, 필요한 것은 <성경책>”라고 했다. 
그들은 성경책을 만들어 보급하다 발각되어 징역사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그들은 이로 인애 핍박 받는 것, 징역 가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실지로 자주 자주 잡혀 간다고 했다. 

결코 두렵게 생각지 않는 마치 성경에서 보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했다. 

( 최근 중국 정부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중화기독협회가 성경을 발간하여 값싸게 배포하고 있다.

그런데도 형제분들이 그 성경을 보시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성경은 ‘많은 부분을 개작하여 주님의 말씀을 변개’시켰다. 
온전한 성경은 구하기도 힘들고 비싸다. 1950년 이전 발행된 성경을 귀히 여긴다.  ) 

정부에서 발행하는 성경은 가짜란 말이 된다. 



(20여 년전 ‘중국지하교회’ Video 시청 한 후---) 


지금 우리가 모이고, 예배드리는 것, 신앙 생활하는 것, 가진 믿음, 소망, 핍박 등등

이러한 것들과 <중국지하교회>와 어떻게 다른가?? 

서방세계에 있는 <교회>라는 그룹들이 <중국지하교회>가 전도에 대상이 되는가? 
앞으로 또 한번의 50년을 그들을 건드리지 말고 “내버려두면”

<중국지하교회>가 중국 공산당을 <잔멸> 시키고도 남지 않겠는가!!!!! 

서방세계에 <교회>는 <중국지하교회>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서방세계에 <교회>는 <중국지하교회>로부터 “무엇을 배우기 전”에

누룩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