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번날. 부모님 친구분께서 저희 먹으라 하시면서 집에서 기른 열무상추를 말 그대로 한 상자를 가져다 주셨고, 보관 잘못하면 먹기도 전에 버리게 생겼기에, 아내에게 등심이나 구워 먹자고 했습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등심스테이크를 사다가 칼 잘 갈아 썩썩 베어 전기 불판에 올려놓고 구워 한참 먹고 있을 때였는데, 마침 동생에게 금요일 저녁이나 함께 먹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뭐 먹을까?" 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는데, 대답은 "고기 먹을래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더위에 며칠 고생했던 듯, 아내는 "오늘 이렇게 고기를 먹는데 또 고기? 냉면 같은 거 먹으러 가면 안될까?"라고 했는데, 아들의 대답은 "싫어요." 였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골이 난 듯 입을 닫았고, 그러다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이들한테, 말하는 거 가르쳐 주세요."

 

전 이것이 무슨 뜻인지 금방 와 닿았기에, 아이들에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에선 말이다, 어른들에게는 싫어도 '싫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거 먹을래요' 라던지, '저는 그게 별로 안 좋아요. 다른 거 먹으면 안 돼요?' 라고 물어봐야 해. 어른들의 마음을 배려해야 하는 거야." 그러자 큰놈은 금방 알아듣고, "엄마 미안해요."라고 이야기했지만, 작은놈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듯 했습니다.

 

둘 다 미국에서 태어난 녀석들이고, 이곳 식의 사고방식이 박혀 있습니다. 아이덴티티는 한국인이지만, 이 아이들은 이미 '한국의 문화를 어느정도 아는 미국인'들이라는 것이죠. 물론 계속 한인 성당에 다녔고, 주말에는 한글학교를, 그리고 주일에는 주일학교 생활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접하고 있지만, 그래도 본질적으로 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영어로 하는 아이들입니다. 우리 부부가 아무리 미국에서 산 지 오래 됐다고 해도, 사고를 하는 언어가 한국어인 이상 우리는 한인인 것입니다. 한국인과 미국인을 가르는 경계점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고하는 언어'라는 부분입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저는 제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법적으로는 한국계 미국인이되, 절대로 버릴 수 없는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스스로를 메트로폴리탄이라고 생각하고, 나름으로 아이들을 그런 관점에서 기르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사소하게 부딪히는 부분들은 어떻게든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아이들은 학교에서 "네 의견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라"는 학습을 받습니다. 미국인들이 한국인이나, 다른 언어를 쓰다가 이민 온 사람들에게 비교적 관대한 것은, 그들이 '발음을 똑바로 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의도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것'을 대화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교적 다른 한국 친구들과, 그리고 어른들과의 접촉 빈도가 높은 지호와는 달리 조금 미국적인 데가 더 강한 지원이는 제 설명이 아무래도 쉽게 와 닿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학교에서 배운 것과 부딪혀 버리니까요. 지원이가 자라면서, 제 설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미국에서 살면서 이런 갈등들은 분명히 이민사회 어디에나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미국에서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이 조금 더 갈등해야 할 거리를 주게 됩니다. 늘 노력은 하지만, 이런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이 실제적으로는 커뮤니티 안에서는 갈등의 근본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 '미국 아이들'의 아빠는 '한국계 부모'로서, 그러면서도 '미국 부모'로서,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