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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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졌다!

에세이
에세이
작성자
낙서꾼
작성일
2012-01-21 17:06
조회
4781

 영하의 날씨로 출근길이 꽁꽁 얼어붙었다. 하루 벌어하루를 연명해 나가는 서민에게 5일째 집에서 눈이 녹기를 바라는 마음은 찹착한 심정이 아니라 심장이 타는 것에 더 가깝다. 창문에 달라 붙는 눈이 참 얄밉다. 녹지 않고 내 눈을 바라보며 어서 밖으로 나와 어제처럼 눈싸움을 해 보라고 도전장을 던지는 것 같다.

 하루, 이틀이야 걱정은 되지만 그렇다고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이틀 굶었다고, 그 까짓것 남보다 잘 먹고 있었다고 큰소리 친 나였기에 들키진 않았지만, 5일째 일을 못해 먹고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제도 라면으로 저녁을 먹었기에 한 밤중에 깨어나 냉장고를 열다 닫다 하다가 찬물만 덜컥 마셔야 했다.

 텔레비전에선 속보로 교통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예 안 보는 게 낫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눈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차장에 쌓인 눈이 차를 막고 있는데, 어떡해 눈을 치우고 길을 나섰는지 의심아닌 의심이 밀려 온다. 누구는 죽지 않으려고 일터로 나가는 걸 포기를 했는데, 또 다른 누구는 죽지 않고자 죽음을 당할 수 있는 길을 나섰다. 사고로 유조차가 전복이 되었는데 인명 피해는 없기에 가슴을 쓸어야 했다. 연일 6일째, 쉴 틈도 없이 내리는 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이것 뿐이라는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일은 비가 내리고 날씨 또한 영상의 날씨로 올라가기에 이왕이면 70도까지 올라가 세상을 덮은 눈이 사르르 녹아 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제는 녹는 눈으로 인해 물이 넘치는 지역이 있다고 하니, 제발 내가 사는 지역과 비지니스가 있는 동네가 아니길 바랬다. 너무 지친건 아닌가. 나만 살고자 하는 욕심이 그리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또 라면이다.  네 식구에 라면은 달랑 두개 밖에 없다. 거기에 김치도 다 떨어졌다. 오랜만에 지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다 같이 굶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 갔는데 한끼 조차 참기가 너무 힘들다.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걸어서 한 시간 아니 이런 상황이면 두 시간 이상 걸려서 간다고 해도 가벼워진 지갑이 발걸음을 붙잡고 만다.

  다행인 것은 설국이란 천국에서 눈썰매를 타며 오랜만에 겨울다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체력이 고갈 되 어제보다 3시간씩이나 더 잠을 자고 있다는 거다.

 

 뉴스에서 교통상황이 위험 하다고 911로 전화를 걸지 말고, 트윗이나 페이스 북으로 올리는 게 더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변한 교통상황을 확인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지금 이 글도 컴퓨터가 아닌, 삼성 갤럭시 Tab에서 쓰고 있을 정도로 편안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자연 앞에는 그저 소용없는 것임을 쏟아지는 눈이 말하고 있다. 그냥 집에서 푹 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데,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또 나가겠다고 할 것이다. 아예 푹 잤으면 하는데 강아지가 짖고 있다. 개 짖는 소리가 어찌 저리도 큰지.   아내 때문에 개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뜨거운 커피도 어느새 냉커피로 변해 단 맛이 아니라 쓴 맛만 난다. 분명 달게 마시고자 설탕을 더 넣었는데...

 뉴스에서 정전이 된 지역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내가 참 불행중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에 차가운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이런 상황에 전기마저 없었다면, 제발 눈이 오길 바라는 나의 바람대로 하늘이 눈을 내려 내게 선물을 주었다고 했던 내 자신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왜 적당한 선물이 아니라 감당하지 못 할 선물을 주셨냐고 하늘을 향해 샷대질을 하며 신을 원망했을 거다. 참, 인간이란 이렇게 항상 남과 비교를 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4시간째 내리는 눈을 보고 있다. 오늘 내리는 눈발은 굵어서 인지 내리는 즉시 세상을 덮고 있다. 아침에 얼마큼 눈이 내렸는지 알고 싶어 자를 눈에 박아 두었는데 그 자가 눈속에 박혀질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다. 이렇게 많은 눈을, 워싱톤주에서 본 것은 아마 내 기억을 되 살린다면, 1996년, 2월 말 쯤이다. 하지만 그때는 바로 녹아 버렸다. 70세 넘은 이웃의 말로, 이렇게 눈이 오랜시간 쌓여 있기는 난생처음 이라고 한다.

  이제 제발 눈이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 소용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와중에 뭐라도 찾아야 하는 나이기에,  "내가졌다!"고 깨끗이 인정을 하고, 밀린 일을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을 하니 두 아들이 더 가까이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갈까? 말까? 고민이 생겼다. 힘이 든다는 핑계를 되고 안 간다고 해도 5일째 썰매를 탔기에 애들은 섭섭하지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섭섭함을 달래주고 어루만져 주고 싶기에, 두 아들과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어른은, 생각만으로도 행복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 반대다. 지금 눈에 보이는 행복을 발로 찾아내  그 속에 담긴 행복을 웃음으로 확인시켜주는 게 바로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행복을 찾고자 항시 움직인다 했다. 그런 아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건 사랑뿐이다고. 

 "아빠~ 우리 썰매 타러 가자" 그 질문에 난 대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나의 행동은,  아이들과 어울려 다 같이 행복을 즐기는 수밖에 없다. 눈이 정강이에 닿았다. 이런 상태로 한 시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또 이런저런 잡 생각이 밀려 왔다. 눈 때문에 장에도 못 간 나. 그러나 더 이상 핑계를 되지 않기로 했다.

  고개를 숙이고 깨끗이 승복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훨씬 편하다.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맹세를 하고, 큰 아들 녀석 손에 든 썰매를 가로채고는 언덕을 뛰어 올라 갔다.

 그래 내가 졌다! 내리는 눈을 인간의 뜻대로 멈출 수가 없다면, 하늘 뜻대로 펑펑 더내려라! 그게 저 어린 아이들의 마음이란 것을 알았버린 나, 나도 오늘은 아이가 되고자 한다. 그런 날 어른아이라고 놀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부러움의 대상이 될 뿐!

 

 

 머리로 희망을 그리고, 눈으로 희망을 보아도, 발로 그 희망을 느끼지 못 하면, 희망은 허망으로 나를 작게 할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의 눈으로 본 희망이 행복의 성이기에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움직여라. 한 걸음이, 두 걸음이요. 두 걸음이 세 걸음, 그 끝이 당신이 걸어 온 생의 길.

 아닌 길을 너무 멀리 걸어 왔다고 실망은 마라. 이제라도 가야 할 길로 바로 서고 움직인다면 그 길은 잘 못된 길이 아니라 지름길이 될 것이다. 길 앞에 서면 거기는 막힌 길이요. 돌아서 가면 거기부터 새 길이 열리기에 항상 깨어나 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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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에 꽃는 꽃이 눈꽃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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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에서 만난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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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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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의 휴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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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설국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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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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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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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빈 설국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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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둘 썰매를 끌고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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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의 밤을 지키는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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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등 불빛에 메달린 고드름이 내게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걷는 게 행복을 더해 주는 거라고 하네요..^^

 

                  차를 덮었던 눈도 간밤에 내린 비에 사르르 녹아내려 물이 되어  바다를 향해 흘러 가더군요.

                   오후 3시 눈에 보이는 흑진주 빛을 내는 바다와 하늘이 마치, 한쌍의 부부처럼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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