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따 샌드위치와 갈치조림
"치즈가 남았던 거 같은데.." 아내는 아이들 만들어 줄 토르따 샌드위치에 넣을 계란 요리를 만들다가 제게 김치 냉장고를 뒤져보라고 말합니다. 음, 치즈가, 여기 저기 있긴 하네. 내가 도시락으로 먹는 블루 치즈 크럼블 말고... 아, 여깄구나. 네 가지의 치즈가 한꺼번에 갈려 담겨 있는 꾸아뜨로 께소,
토르따 Torta 라는 말 자체가 샌드위치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걸 만드는 빵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태리에서도, 스페인에서도, 멕시코에서도 그렇게 불립니다. 멕시코에서는 육류가 잔뜩 들어간 엄청난 크기의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하고 쿠바식의 샌드위치도 맛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피자라고 발음하지만, 이곳에선 피자라고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피잇~짜" 정도로 말하면 알아들을겁니다. 빙빙 돌려 만든 얇은 빵('도우'라고 하지요) 위에 치즈와 토핑을 얹어 먹는 이 문화는 원래 나폴리 지역의 문화였을 것이나 이곳에서 하부 문화로 유입돼 지금은 미국 음식 문화의 메인이 되어 있지요.
하긴, '미국의 음식 문화'라는 건 그렇습니다. 햄버거는 독일 함부르그 식의 저민 고기 샌드위치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것이고, 핫독 역시 그 독일식 음식 문화가 일반화된겁니다. 프라이드 치킨은 흑인들의 음식 문화였지요. 노예들에겐 오븐이 있는 집이 없었고, 오븐 대신 뜨거운 열을 가해 요리하는 방법은 튀기는 것이었습니다. 백인들이 먹지 않았던 닭다리와 날개, 닭의 목 등은 구하기 쉬운 옥수수가루 튀김옷을 입고, 흑인들이 재배하던 목화씨에서 짜낸 면실유 기름에 튀겨졌습니다.
이들은 백인들이 먹지 않았던 생선도 먹었습니다. 백인들은 처음에 수염이 난 메기 같은 생선은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노예들에겐 단백질원이 별로 주어지지 않았고, 때문에 그들은 백인들이 먹지 않는 생선들도 먹거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피시앤 칩스 집은 흑인 동네인 시애틀 마틴 루터 킹 웨이 선상에 있습니다. 그 집에서 제일 자랑스럽게 내 놓는 메뉴가 캣피시 앤 칩. 즉 메기 튀김에 튀긴 감자를 함께 내 놓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생선튀김이라고 하면 대구나 광어(핼리벗)를 말하지만, 캣피시는 그 식감이 좀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또 이것대로 특유의 맛이 있지요.
이제 이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라티노의 먹거리 문화입니다. 타코라고 하는 음식이 그렇습니다. 멕시코 사람들이 먹는 옥수수 전병인 '토르띠야'는 샌드위치 빵인 '토르따'보다는 좀 하위 개념이라고 할까요. 그렇지만 이 토르띠야는 빵을 만들 때 들어가야 할 이스트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이런 저런 변형이 쉽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콘 칩이라고 부르는 스낵은 이 토르티야를 썰어 튀겨 낸 것이지요. 괜찮은 멕시코 식당에 가면 음식을 시키기 전에, 손님이 앉자마자 이 토르티야 칩을 전채로 내지요. 여기에 멕시코 특유의 양념인 '살사'를 곁들여서 말입니다.
미국 문화는 이렇게 하부구조에 있던 문화들이 점점 메이저 문화로 잡혀가는 것으로서 시민권을 얻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민자들의 음식으로 별로 사람들이 찾지 않았던 이태리 음식이 미국의 메인 음식으로 시민권을 얻은지는 오래입니다. 라티노들의 음식도 마찬가지고. 동양 음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식은 이미 스시와 뎀뿌라 같은 것들로, 그리고 중국음식도 마찬가지고. 우리집과 부모님 집 사이에 있는 디모인이라는 동네에는 유서깊은 푸줏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요즘 파는 가장 인기있는 대표적 고기 부위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Kal-Bi(Korean Style Short Rib). 이제 우리 음식도 이곳에서 어느정도 시민권을 얻은 셈입니다.
아내가 만든 갈치조림이 맛있습니다. 그러나 밥을 깜빡 잊었는데, 그건 오늘 저녁엔 구역회가 있는 날이고 그 집에서 밥을 먹으면 되지 싶어 밥을 안 했다더랍니다. 그런데 갈치조림은 맛있고, 밥 없이 먹으니 좀 이상하고. 뭔가 탄수화물이 곁들여져야 하지 않겠는가 했더니 아내는 토르따 샌드위치를 뚝딱 만들어 냈던 겁니다. 샌드위치와 갈치조림, 참 이상하지요? 그런데 맛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에서의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삶의 부재료'처럼 느껴졌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