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바르게 살다 가는가?
어떻게 해야 바르게 살다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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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아동보호시설이 약 300개가 된다.
여기에 있는 아동들은 부모라는 용어를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다.
해서 수 해 전부터 이 아이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가지고 있는 영어 단어장을 소개하기로 하였다.
시작한지 수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많은 곳에서 포기들을 하고
몇 곳만 열심히 읽어 줘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한 곳이 어언 130회가 (3-5일에 한 회)되어
그들이 고마워서 나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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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그 시설에 오늘 올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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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안녕?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먹을 것도 잠자리 걱정도 없고
학교까지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으니 말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늘 얼굴이 펴져 있어 보는 사람마다 마음을 편하게 하지요.
여러분은 얼굴을 펴고 있습니까, 찌푸리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불행은 내 손안에 있답니다.
얼굴을 활짝 펴서 어깨를 쫙 벌려서 힘차게 살아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나이 때,
배가 고파 먹는 것 이왼 머리에 생각하는 게 없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하루에 두 끼를 먹든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답니다.
그리고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그 추운 겨울에 불도 덜 땐 온돌방에서
긴 겨울밤을 지내기엔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그 때 난 9살에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 오곤 했었지요.
그 땐 부엌에도 쓰고 온돌방에도 쓰려면 나무가 있어야 했지요.
그런데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할 일도 없고 춥기도 해서 지붕 처마 밑에서
햇빛을 받고 있었는데 이를 본 옆집 아저씨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한문을 가르쳐 줄테니 배워라, 공부가 많이 되면 추위도 잊게 되는 길을
찾을 수 있단다. 그런데 지금같이 배고프고 춥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면 내년엔 더 춥고 더 배가 고파진다.” 고 했지요.
이 아저씨는 난쟁이였답니다.
그 분은 한학 (漢學)을 많이 공부한 분으로 우리에게 공부를 시켜주어
우리 동네 아이들은 돈도 드리지 않고 공짜로 두 해를 공부를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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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한문 천자문을 완전하게 배워 쓰고 읽고 해석할 수 있었답니다.
이런 차에 나라가 1953년 6/25 전쟁이 끝이 나고 정부가 서울로 돌아가면서
난 친척의 소개로 서울 중앙청 문교부에 사환으로 공개 채용 시험을 치러 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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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문 배운 것이 도움이 되어 사환을 하겠다고 나 까지 다섯 명이나
응시를 했는데 내가 합격이 되어 12살 나이에 문교부 경리과에 사환으로
정식으로 준공무원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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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난 혼자서 공부를 하고 또 하고 해서 61년 5/16 혁명이 난 이후
대한민국에 첫 공무원 공채 시험이 있어 여길 응시해서
65:1의 경쟁을 뚫고 합격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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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당시도 살기가 어려워 중학교를 낮엔 공장에서 밤엔 학교로 해서 마쳤는데
여기 국가시험 응시자 중에 중학교 졸업생이 나 혼자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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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난 공무원이 되어 혼자서 공부를 하고
대학도 마치고 공무원으로서 지위도 올라가고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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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국에 온지 35년이 지났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한국의 아이들이 쉽게 영어를 배우게 할 수 있을까를 공부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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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친형제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고맙다는 마음으로 대하세요.
복은 스스로 지어서 받는 거랍니다. 난 여러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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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 잘 하면 가진 것 없어도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늘 웃는 낯으로 살아야 복이 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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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고맙다는 생각으로 얼굴을 피고 대하세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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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뭔가 주고 싶어도 난 가진게 없어.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나가 웃음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웃는 얼굴로 대하면 누구라도 웃는 얼굴로 답을 한 답니다.
그것은 나의 마음의 선물을 받았다는 예기가 된다고 본다.
모두가 힘이 들지만 웃음을 잊지 말고 살았으면 해서 이 글을 올린다.
세상만사
제행무상이요
무시무종이라 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