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고 살면 좋을 말(일)(2 회)>
<고치고 살면 좋을 말(일)(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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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이어
욕먹을 각오하고 이 글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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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려(配慮)/yield(이이일드) ”
배려 없는 민족이 될 것인가?
그립지만 그렇게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이게 하는 일이 있다.
떠난 지 7년 만에 한국에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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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버스 카드를 사려고 한 편의점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이 닫혀 있어 문을 당겨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뒤에서 어떤 여자 분이 오기에 먼저 들어가라고 문을 잡고 있었다.
그 분은 이렇다 저렇다 표정 없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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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뒤에서 다른 분이 또 들어오려기에 들어가라 하고
문을 잡고 있었는데 몇 사람이 뒤 이어 들어가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아 기분이 그랬었다.
바로 이것이다.
남에 대한 조그만 배려도 모르는 행태들이다.
말이 없으면 고맙다는 눈인사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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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마 바빠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만 바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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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린 배려가 필요한가?
인간은 사회의 한 일원이다.
나만의 사회란 없는 것 언제나 타와 더불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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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상대를 무시 해버리는 일, 이기적인 일 등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사회가 병이 들면 나의 삶도 덩달아 병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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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삶이라, 지나친 경쟁으로 앞서 지나치다보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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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섬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애써 외면하고
그 누군가의 도움에 감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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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크고 작은 많은 다툼은
이기적인 자기주장만을 앞세우고 행동하는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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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본다면
대부분의 오해와 시기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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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고 뒤짐의 결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윤활유처럼 누군가를 위해 배려하는 것이
바로 공존의 이유이다.
이는 가정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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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에 여럿이 올라가고 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끌어 내리고 올라가려는 게 바른가,
올라가라고 밀어 주고 다음에 올라가려는 게 바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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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엔 도로 곳곳에 “YIELD” 라는 표지가 있다.
난 이를 한글의 "배려"로 받아드린다.
양보는 곧 배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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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질은 국민의 질을 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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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 의천
진짜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다.
Jeffsky
2021.10.11 17:31
진짜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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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입니다.
이러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고맙습니다.
한참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나온 한국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
일주일에 두번 우편을 통한 배달이 가능한 한국일보를 구독하는 일이었다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은 미국의 생활
가끔 여행이란 이름으로 미국의 여러 곳의 사진과 길 안내의 기사를 보며
이런 때도 있으려니 하는 막연한 희망도..
카니 강이란 고(故) 여성 기자의 기사
한국 생활에서 어깨를 부딪치고 아무런 사과도 미안함도 가지지 않는 무례,
바쁜 걸음만 재촉할 뿐 자기 이외의 삶에 관심조차 없는 이기를 느낀
몇년 간의 기억을
한참 후에
정(情)이란 정의로 잊지 않고 기억해 사소한 자리에서 고맙다는 인사로 들었다는…
웃으며 인사하는 살가운 이웃의
How are you? 혹은 Have a good day 의 가벼움
침묵으로 무례로 닥아오는 이질감은
스스로가 다르게 산 삶의 기준일 뿐,
그들은 그들만의 기준이 되는 삶이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진실한 불편으로 기억되는 그녀의 기사
닉 할아버님도
오랫동안 미국의 삶이 한국의 삶의 기준이 되거나
푸아그라, 오르톨랭은 용서가 돼도
개고기는 용서가 되지 않는 교육이 이유가 되거나 한 것은 아닌지요?
"Incredibly polite or incredibly r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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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Linving in Korea by Dr. Underwood.doc
Very good and insightful observation on Korean society and people.
배려를 영어로 yield 가 아니라,
consideration 이 더 맞을 듯 지적 해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 말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지만 나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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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단어가 쓰이는 용도에 따라
어떤 건 생활 어인 구어체에 쉽게 쓰이고 있는가 하면
어떤 건 문서들, 문어체에 맞는 게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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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yield 는 기능어로 쓰이고 있고
consideration 은 기능어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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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의 원 글에도 있지만 이는 “양보”의 뜻이니
양보는 배려하는 마음에서 오기 때문이라고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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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해주신 분 글 틀리다는 것이 아니고
나의 의견을 드린 것뿐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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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못이라고 보이면 언제든지 지적을 해주시면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배려 는 명사 (noun) 입니다. Yield 는 명사로는 'output' 을 의미합니다. 동사 (verb) 로는 양보하다. '자신보다 타인을 더 배려하세요' 를 영어로 해보세요. please have consideration for others 라고 하지 please yield for others 라고 하지는 않지요. 자리나 순서, 차 운전할때나 기다릴때, please yield 라고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yield 는 양보가 맞는것이지 배려는 아닙니다. 기능어? 처음 들어봅니다. 뭐 워낙 고집이 세신 분이니, 제가 지적하는것을 받아드릴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는 FWIW
알겠습니다.
그런데 “배려와 배려하다”는 무엇이 다릅니까?
어떤 문장을 표현하면서 문장에 들어간 단어가 아니면 즉 단어 하나만 쓰면 문법에
맞춘 뜻이나 요식은 필요하지 않고 쉽게 그 뜻만 전달이 되면 되는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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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면 “배려하다”가 되고
“양보”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면 “양보하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보하는 마음”은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배려하다”를 줄여 표현 하면 “배려”가 되니 그래서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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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적을 해주시는 것은 고맙게 받아드리지 만
“고집”이니 하는 용어는 적절하지 못한 표현으로 봅니다.
지적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 속에 글 있고 말 속에 말 있다.”는 속담이 있다.
말과 글은 그 속뜻을 잘 생각해 봐야 된다는 뜻으로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도 쓰일 수 있고 저렇게도 쓸 수 있다면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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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영어 문장이라면 몰라도 단어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쓰면 옳다 아니다
하는 것은 아주 다르게 쓰였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적절한 말이 아닌 것 같고
가능하면 글 전체로 봐서 무리가 없다면 좋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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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국말에 “--생각한다.” “--본다”라고 글 끝을 맺을 때는 어느 부분을
단정적으로 표현 한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는 한글 읽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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