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브루어리가 선사한 ‘인생 맥주’ - Chuckanut Pilsner
‘인생 맥주’를 찾았다 하면 유난스런 오버인가? 원하던 직장에 일자리를 잡은 아들 여친을 축하하기 위해 온가족이 저녁을 함께 했다. 주인공이 고른 레스토랑은 사우스센터 ‘딘타이펑(Din Tai Fung)’ 딤섬집이었다. 평소접하지 않던 특식에 맥주를 곁들이고자 ‘처카넛 필스너(Chuckanut Pilsner)’를 주문했다. 혀에 감기며 목젓을때리는 시원함에 반해 딤섬 대신 필스너 석 잔으로 배를 채웠다. 필스너가 맥주의 한 종류란 것만 알았지 어떤색깔, 무슨 맛인지 전혀 몰랐다가 이날 그 맛에 매료됐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알코올 섞인 각종 물’들을 많이 섭렵한 결과, 주류 종류별 선호하는 취향이 확실한 편이다. 위스키는 싱글 몰트, 와인은 샤도네, 소주는 진로 빨간 뚜껑, 꼬냑은 레미 마르텡, 맥주는 라거 스타일을 고집한다.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말이다.
딤섬집에서 마셨던 맥주를 검색해 봤다. 놀랍게도 워싱턴주 가장 북쪽 도시 벨링햄에 양조장을 갖고 있는 로컬 맥주였다. 이어 뒤따르는 검색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워싱턴주에 등록된 맥주 양조회사(Brewery)는 총 380여군데로 이중 약 70여 곳이 시애틀 시에서 영업 중이다. 캘리포니아에 이어 브루어리 숫자만 따지면 두번째로 많다. 레드훅(Redhook), 엘리시안(Elysian), 맥앤잭(Mac & Jack), 조지타운(Georgetown), 파이크 브루어링(Pike Brewering), 프레몬트(Fremont) 등 한인들에게도 나름 친숙한 브랜드부터 베일 브레이커(Bale Breaker), 루벤스(Reuben’s), 블랙레이번(Black Raven), 노라이(No-Li), 해일스(Hale’s), 마리타임(Maritime) 등 수 많은 맥주 레이블들이 시장에서 경쟁 중이다.
몇 해 전 한국에서 온 친지가 현빈이 영화를 찍었던 곳을 가보고 싶다고 해 프레몬트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 조그만 동네에 해일스, 프레몬트, 마리타임, 루벤스 등 맥주 양조장들이 몰려 있어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다. 와이너리처럼 본사 직영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해 갓 뽑은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듯 싶었다.
로컬 맥주회사들이 주력으로 내놓는 IPA 맥주를 개인적으로 ‘극불호’ 한다. 너무 쌉쌀하고 텁텁해 청량감 있는상큼함이 맥주의 참맛이라 길들여진 내 입 맛에는 영 마뜩찮다. 같은 이유로 스타우트(Stout), 앰버(Amber), 헤이즈(Haze) 스타일 맥주도 ‘절대’ 즐겨 마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한국 맥주도 호프 비율이 너무 빈약한 탓에 ‘배만 불러오는 보리 우린 물’ 같아 즐기지 않는다.
한동안 체코 스타일 라거 ‘필스너’를 브랜드 별로 시음할 재미에 빠져 살 생각에 벌써부터 취한다.
한국에 있었을 땐
오비 아님 크라운 맥주
여기 미국에 와서는
버드와이저, MGD 아니면 쿠얼스 라이트
요정도 이름만 들었는데
맥주 종류가 많긴 많은가보네요 ㅎㅎㅎ
전 맥주 마시면
배만 부르고 화장실만 디립다 자주 가는게 싫어서
짧은 시간에 빨리 취하는
쐬주나 스카치 위스키를 좋아하는 편인데
님처럼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마시는 맥주라면
마셔볼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글을 읽다보니
문득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의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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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합니다. 조선맥주에서 암반수를 내세워 '하이트'를 출시하며 한국 맥주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역전시켜 버렸습니다. 70:30의 점유율을 단박에 뒤집은 뒤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이트가 여전히 암반수로 맥주를 제조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도 "그 많은 양의 맥주를 지하 암반수로 채운다?"란 의문을 계속 가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마케팅 용어라 전 결론 내렸습니다. 소비자들은 "암반수 사용 사실하면 좋고 아니어도 큰 상관 없다. 맥주 맛만 좋으면 일단합격"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특히 여성과 젊은 음주 소비자들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시장상황을 조선맥주는 '부드러운 맥주'로 기가 막히게 잡아낸 셈입니다.
해방 이후부터 줄곧 한국 맥주시장을 장악해 온 동양맥주는 일일천하에 그칠 것으로 보며 안일하게 대응하다 결국 시장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신제품 개발보단 네거티브 전략을 들고 나와 공격하다가 점유율이 따라잡히자, 하이트 맥주와 반대 컨셉 진한 풍미의 맥주 'SKY' 'NEX' 'ICE' 등을 출시하다 철저히 패퇴하고 맙니다. 뒤늦게 'CAFRI'란 순한 맥주를 선보였지만 하이트의 아성을 무너뜨릭엔 역부족. 결국 회사지분을 벨기에 맥주회사에 넘기는 비운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소비자들은 현명하면서도 아둔합니다. 전자제품이건/생활용품이건/자동차건/글을 읽는 독자건/선거에 임하는 대중이건 자신의 취향과 선택을 좀처럼 바꾸지 않으려 하면서도 한번 바꾼 선택에 어떻게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경쟁사의 제품/주장/의견에 신제품/새로운 주장 대신 네거티브 전략만을 유지하면 90년대 한국 맥주시장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됨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