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조중동은 황색언론이다!
선데이 서울, 주간 경향,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 적잖은 영향을 준 간행물이 있다. 각종 엽기 사건과 사고, 찌라시 급 루머 기사,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와 더불어 잡지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고민 상담 등 어른들이 좀처럼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 비밀을 은밀히 캐냈다.
이후 이런 부류의 간행물들에 노란 딱지를 붙여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옐로우 저널리즘. 언론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이런 간행물들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둘로 나뉜다.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재미삼아 읽는 부류와 아니 땐 굴뚝 운운하며 ‘개연성이 충분한’ 정론으로 받아들이는 쪽이다.
어느 쪽을 믿든 개인의 자유인지라 상관할 바 아니지만, 상식의 허용치를 넘어선 허구와 날조에 가까운 이야기에 여기저기 살을 붙여 ‘진실’이라고 공개적으로 떠벌리는 순간이 문제다.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랩타일 인’ 등등 수퍼마켓 카운터 옆 매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황색 가십 주간지의 황당한 제목을 한번쯤은 마주쳤을 것이다. 쓴웃음 한번으로 넘길 이야기를 정색해 주위에 떠벌리기라도 하면 ‘또라이’ 취급 당하기 딱 좋다.
‘듣보잡’ 천공이란 땡중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락 댄다. ‘킹 메이커’에 대한 예우인지 정권과 권력을 나누어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연일 호의적인 기사가 쏟아진다. 미 연방준비위원회가 이자율 인상하고 유가가 급상승하며 인플레이션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도 ‘김건희 여사의 아웃핏’을 긴 지면을 할애해 친절하게 소개해 준다. 상식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개인의 일탈로 판단하는 공무원의 북한군 총격사망 사건을 전 정권 심판으로 여론몰이 중이다.
흔히 말하는 보수언론 ‘조중동’의 협공에 ‘판단력 흐린 노인’들이 팩트라 믿고 따른다. 어르신이란 호칭을 붙이기에도 역겨운 이들이 벌이는 문제의 심각성은 “거 봐! 신문에서 이렇게 말하잖아”라며 열심히 퍼나르며 여론을 갈라치는데 큰 힘을 보탠다는 것이다. 현 싯점 나에게 있어 ‘조중동’은 선데이 서울과 다를 바 없는 ‘황색 언론’이다. 요즘은 제목만 봐도 조선인지 중앙인지 알 수 있어 메인 기사까지 들여다 보지 않는 혜안까지 갖추게 됐다. 설령 잘못 클릭해도 재미삼아 읽을 뿐 믿지 않도록 뇌회로가 바뀌었다. 기사에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정론지를 표방하는 대표 일간지들이 ‘옐로우 찌라시’로 바뀌고 있는 것은 기자들이 ‘기레기’로 바뀌어서 일까, 아님 정권을 손에 쥔 취재원들의 ‘뻘짓’ 때문일까?
PS: 이준석과 배현진 역시 젊은 보수의 투 탑. 사랑싸움이 일간지에 실시간 보도되는 걸 보니. 싸우다 정들 듯. 이참에 결혼까지 ‘good luck’
황색언론, 옐로우 찌라시, 국힘 젊은이의 사랑싸움과 당대표의 성상납 의혹...
이런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혼합되어서
오래된 기억 속에서 옐로우 하우스가 문뜩 떠오른다.
수도권 지역에서 살던 사람이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인천 학익동, 일명 끽동에 있었다던 성매매 지역을 일컫던 말이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았던
아픔을 지닌 곳이 옐로우 하우스라면
권력에 빌붙어
저들만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민족의 자존심을 버리면서
일본 천황 만세를 외쳤고
언론의 사명감을 저버리고
김일성 만세. 전두환 만세를 외쳤던
악질중의 악질 언론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