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87 ’의 혁명

이 철 2007.07.11 09:09 조회 수 : 2914 추천:37

시애틀 교외 에베렛에 있는 보잉 항공기 제작공장에 가면 방문객들을 위한 미래 항공기 전시장이 있다. 이 전시장에는 보잉의 21세기 여객기인 ‘드림 라이너’의 내부가 모형으로 공개되어 있는데 여객기 창문 사이즈가 크고 천장이 하늘과 똑같이 꾸며져 자신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며 실내의 색깔도 시간에 따라 변하고 무엇보다 의자 간격이 넓어 편안하다. 그리고 실내의 습기가 지상과 똑같은 양으로 조절되어 장거리 비행을 하면 골치가 아프던 폐단을 시정하고 엔진소음도 거의 없다. 이 ‘드림 라이너’가 바로 보잉이 지난 8일 세계 항공사 CEO들을 초청하여 “깜짝 쇼”를 통해 공개한 ‘보잉 787’ 여객기다.
‘보잉 787’은 유럽의 대형 항공기 A-380과 함께 항공업계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았다. 프로펠러 여객기에서 제트 여객기의 시대를 알린 것이 ‘보잉 707’이고 중간 연료보급 없는 태평양 횡단 시대를 열어놓은 것이 ‘보잉 747’이 점보 여객기였다면 ‘보잉 787’은 기체 혁명시대를 열어놓은 셈이다.
지금까지의 비행기체는 철보다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었으나 보잉 787은 이보다 더 가벼운 화학섬유 ‘탄소 복합소재’로 만들어진 혁명적인 기종이다. 골프채가 쇳덩어리로 만들어지다가 가벼운 그래파이트로 바뀐 변화나 마찬가지다. 또한 기체와 부속품을 로봇을 이용해 3일이면 제작 완료하는 믿기 어려운 항공기 생산업계의 꿈을 이루어냈다. 787은 종전의 무게에서 약 4만파운드를 감량, 20%의 연료를 절약해 여객이나 항공사 모두의 꿈을 실현해 보였다.
전 NBC-TV 뉴스앵커 톰 브로커가 진행한 8일의 발표회에서 보잉은 787을 677대나 주문받아 2015년까지의 제작량 전체가 매진되었음을 과시했다. 요즘 세계 각 항공사들은 연료 절약을 위해 보잉 787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KAL이 보잉 787의 후방 동체와 날개 끝 부위의 윙탑 제작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동업자 의식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보잉은 구하기 힘든 이 기종을 KAL에 10대나 매매하고 10대를 옵션 계약하는 특혜를 주었다.
어떻게 하면 연료를 절약하느냐. 이것이 세계 항공업계의 숙제다. 연료가가 치솟아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도 1973년 제1차 석유파동 때 하마터면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 그때 보잉은 직원 수를 15만명에서 3만8,000명으로 줄이는 바람에 ‘보잉시티’로 불린 시애틀에 경제공황이 닥쳐 시민들의 탈출바람이 불었었다. “시애틀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은 불을 끄고 가시오”라는 당시의 어느 광고 제목을 시애틀은 뼈아픈 교훈으로 삼고 있다.
보잉은 원래 1927년 윌리엄 보잉이라는 독일계 이민이 세운 회사지만 그가 죽기 전 주식을 다 팔아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뚜렷한 오너가 없는 퍼블릭 주식회사다. 보잉 성장에는 2차 대전과 한국전쟁, 월남전, 그리고 이라크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이 전쟁을 치를 때마다 군수산업의 생산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보여주는 표본이 바로 보잉이다. 보잉의 변화는 바로 미국의 변화다. 보잉이 어느 쪽으로 가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기업인들에게 하나의 묵시적인 교과서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 고 문  한국일보 미주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