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짓 소리?

윤여춘 2007.07.23 08:10 조회 수 : 2450 추천:32

LA의 한 친지가 지난주 시애틀에 출장 왔다가 퓨짓 사운드(Puget Sound)라는 말을 신물 나게 들었던지 “그게 시애틀의 상징 소리인 모양인데, 어떤 소리냐”고 물어 박장대소 했다.
그 친지는‘Sound’는 제쳐두고 ‘Puget’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모양인데, 영한사전을 자세히 보면 ‘Sound’는 ‘소리’ 외에 ‘건전하다’ ‘수심을 잰다’와 함께 ‘해협(海峽)’이라는 뜻이 있다. 퓨짓 사운드는 바로 ‘퓨짓 해협’이고 퓨짓은 이를 처음 탐사한 영국인 이름이다.
우리가 일상 바라보는 시애틀 앞바다는 분명히 태평양이지만 실제로는 시카고의 미시간 호수보다 작은 내해(內海)이다. 한진해운 컨테이너 화물선이 시애틀에서 부산을 향해 망망대해로 나가려면 에드먼즈와 포트 앤젤레스를 거쳐 니아 베이까지 거슬러 오림픽 반도를 돌아가야 한다.
빙하에 휩쓸려 패인 계곡에 바닷물과 육지의 강물이 흘러들어 생긴 퓨짓 사운드는 해안선 길이가 시애틀-LA 거리보다 긴 2,500마일이다. 그 안에 250개의 섬과 700여개의 이름 없는 바위돌기가 산재해 있다. 시애틀 앞바다가 930피트로 가장 깊고, 평균수심도 450피트나 돼 다리를 놓지 못하고 대형 거룻배인 페리가 사람과 차를 함께 실어 나른다.
영국 탐험가 조지 밴쿠버의 범선 ‘디스커버리’호가 1792년 5월19일 현재의 베인브릿지 섬과 블레이크 섬 중간지점까지 들어와 닻을 내렸다. 원주민 인디언들이 통나무 카누나 타고 다니던 이 잔잔한 내해에 외지인으로서는 처음 들어온 밴쿠버는 부관인 피터 퓨짓과 갑판장 조셉 윗비로 하여금 남쪽으로 더 내려가 자세히 살피고 오도록 지시했다.
밴쿠버는 당초 퓨짓이 탐사한 남쪽해역을 퓨짓 사운드로 명명했으나 나중에 그 이름이 내해 전역에 확대적용 됐다. 한달뒤 윗비는 다시 북쪽 해역을 탐험하다가 엄청 큰 섬을 발견했다. 밴쿠버는 지체 없이 그 섬을 ‘윗비 아일랜드’로 명명, 6월4일 퓨짓 사운드와 함께 대영제국 영토로 선포했다. 밴쿠버 자신도 이곳까지 오면서 요충지로 보이는 세 곳(워싱턴주 밴쿠버와 캐나다 BC주의 밴쿠버 및 밴쿠버 아일랜드)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
서북미가 1846년 미국영토로 바뀐 뒤 퓨짓 사운드는 워싱턴주의 심장부가 됐다. 킹·스노호미시·피어스를 비롯한 10개 주요 카운티가 내해를 감싸고 있다. 시애틀·타코마·벨뷰·에버렛 등 도시들로 형성된 소위 ‘퓨지트로폴리스(Pugetropolis)’ 안에 주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밀집해 있고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코스트코 등 세계적 대기업들도 그 안에 있다.
그 퓨짓 사운드에 한인도 이미 100여년 전 첫 발을 디뎠다. 1900년대 초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계약인부로 들어온 11,000여명의 한국인 가운데 일부가 워싱턴주로 옮겨와 야키마 농장과 퓨짓 사운드의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다. 그 뒤 유학생, 국제결혼여성, 전문인 등의 이민물결이 이어져 현재 15만여명의 한인이 퓨짓 사운드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본국인들이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이 지역을 이민 목적지로 꼽고 있다.
퓨짓 사운드는 실제로는 한인들의 제2 고향이 아니라 본향이다. 한민족의 조상인 몽고인들이 12,000여년전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거쳐 신대륙을 계속 남하한 끝에 풍수 좋은 이곳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퓨짓 사운드의 수많은 인디언은 바로 우리의 형제인 셈이다.
LA 친지가 궁금해한 퓨짓 사운드의 상징 소리는 아마도 PUGET을 풀어 쓴‘평화(Peace), 단합(Unity), 선의(Goodwill), 상록(Evergreen), 진실(Truth)의 소리일 것이다.
윤여춘(편집인) 한국일보 시애틀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