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협상과 국민성

이 철 2007.07.27 00:26 조회 수 : 2190 추천:42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들이 어떻게 될까하고 모두 가슴 조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탈레반이 지금까지 납치한 여성을 죽인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독일 여기자 1명을 납치해 살리느니 죽이느니 협박하다가 결국 풀어 주었다. 그러나 독일 남자기자 2명은 몇 달 전 처형한 적이 있으며 며칠 전에도 독일 기술자 2명이 또 납치 되었었다.
메르켈 독일 여수상의 입장은 매우 강경하다. 인질협상에서도 원리원칙을 고수하려는 독일 국민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탈레반의 공갈협박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필요하다면 독일군을 증파 하겠다고 한술 더 뜨고 있다. 독일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전투병력 3,000명을 주둔 시키고 있다.
이탈리아는 인질협상에서 스타일이 좀 다르다. 다혈질이고 정부가 여론에 너무 민감하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데가 있다. 로마 일간지 기자 마스트로지아코모가 지난 3월 납치되자 이탈리아는 온 나라가 냄비 끓는 것처럼 시끌벅적대다가 탈레반이 이탈리아 기자의 운전기사(아프가니스탄인)를 죽이는 강경한 자세로 나오자 당황해 나중에는 프로디 수상이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했다.
프로디 수상은 만약 마스트로지아코모 기자가 처형되면 국회에 상정 중인 아프가니스탄 주둔 이탈리아군 예산이 부결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각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식으로 호소해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욕먹더라도 한번 봐주자”고 결단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협상에 대해 나토국들이 프로디 수상과 카르자이 대통령이 탈레반의 테러행위를 돕고 있다고 맹비난 하자 할 수 없이 카르자이 대통령은 “이같은 협상은 1회에 한 한다”고 직접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외국인은 60여명에 이르며 처형된 인질은 9명이다. 처형된 케이스 대부분은 군속 기술자이거나 취재기자며 한국인의 경우와 같이 잠시 여행 온 민간인 단체를 납치한 적은 없다. 만약 이같은 여행자들을 탈레반이 처형하면 탈레반에 대한 국제여론이 나빠질 것이라는 것쯤은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풀려날 것이라고 낙관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피납자 대부분이 여성인데다 23명이나 되기 때문에 납치 관리도 힘들어 일부는 조만간 풀어줄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군은 납치된 한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섣부른 오버액션은 한국인들의 희생을 불러올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구출작전을 억제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군이 아니라 영국군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나토국 대부분이 병력을 파견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은 지금까지 자국민 피납에 탈레반과 협상한 적이 없다. 협상하면 납치사건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협상을 성공시켜 자국민을 다 살려냈다. 심지어 돈 주고 인질을 빼낸 적도 있다. 한국정부는 이탈리아 케이스를 따를 것 같다.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면서도 자국민들을 모두 풀려나도록 하는 길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납치된 사람이 한두명도 아닌 23명이고 보면 정부가 스타일을 좀 구기더라도 협상을 성공 시키고 볼일이다.

이 철 / 고 문   한국일보 미주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