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토론’의 새 시대

박 록 2007.07.28 07:26 조회 수 : 2311 추천:35

아직도 많은 미국인의 가슴속에 이상적 대통령으로 살아있는 존 F. 케네디는 말하자면 첫 TV 대통령이다. 캠페인 초반 노련한 정치가 리처드 닉슨에 밀려 상당히 열세였던 케네디에게 승리를 안겨준 결정적 요인은 후보간 TV토론이었다.
1960년 미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TV토론의 영향력은 선거의 판세를 완전히 뒤집을 정도였다. 훤칠한 외모와 확신에 찬 분명한 어조로 지지를 호소하는 젊은 상원의원 케네디는 선천적 TV형 리더였다. 미 전국 안방의 유권자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예정된 4차례의 TV토론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이도 많고 용모도 떨어지는데 별 준비도 없이 TV 앞에 선 닉슨의 참패는 확실해 보였다. 라디오토론에서 유권자의 신임을 얻었던 닉슨의 정책과 능력은 비주얼시대에 힘이 되지 못했다.
링컨이 휘어잡았던 ‘광장 토론’에서 루즈벨트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라디오 연설’시대를 거쳐 지난 수십년 미 선거캠페인의 흐름을 이끌어왔던 ‘TV토론’시대가 이제 또한번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난 월요일 선보인 ‘유튜브 토론’의 새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CNN은 민주당대선후보 토론회를 주최하며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토론은 인터넷상의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YouTube)에 올라온 유권자들의 질문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며 후보들의 답변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성과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대성공이다, 역사적 순간이었다’는 찬사도 요란하고 ‘흥행쇼다, 대통령마저 이런 식으로 뽑아야겠느냐’는 개탄도 들린다.
양쪽 다 일리가 있지만 찬성과 반대 중 하나를 택하라면 찬성 쪽이다. 우선 지루하지 않았다. 새롭고 재미있어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지켜보았다. 솔직히, 아, 후보토론회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일찍 시작되어 벌써 피곤해지기 시작한 2008년 대선캠페인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도 있을 듯하다.
8명의 후보들이 일렬로 죽 늘어 선 토론회장의 모습은 종전이나 비슷했다. 다른 것은 무대 옆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그 스크린을 통해서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에둘러 말하지말고 솔직하게 답변해달라’는 첫 질문자의 요구부터 신선했다.
유튜브를 통해 올려진 3,000개의 질문 중 CNN관계자가 30여개를 추려냈다. 예상보다 이라크전 질문도 적고 기발하게 튀는 동영상도 많지 않아 오히려 놀랐다지만 CNN이 걸러낸 덕인지 기성세대에게도 거부감을 주지 않을 만큼의 차분함은 유지했다.
이슈는 같았다. 이라크전과 헬스케어, 교육과 세금, 동성애결혼과 인종…그러나 묻는 사람과 묻는 방식에 따라 이슈가 던지는 메시지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왔다.
무너진 의료보험제도를 어떻게 개선하겠습니까 라고 기자가 물을 때와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모에게 음식을 떠먹이는 중년의 두 아들이 “이런 병과 싸우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호소하듯 묻는 것은 크게 달랐다. 남의 일인듯 싶은 일반적 이슈에서 ‘사람’이 느껴졌다. 유튜브 토론의 강점은 이슈의 의인화였다.
편안치 않은 질문도 거침없이 던져졌다. 미국엔 ‘정치적으로 적절한(politically correct)’라는 어휘가 있다.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지 말라는 경고가 함축되어있다. 구설을 염려하지 않는 일반인들이니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인종·성별 관련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혼혈 엘리트인 버락 오바마를 향해 ‘당신 흑인 맞나요’라고도 물었고 힐러리 클린턴에게 ‘여성을 2류시민 취급하는 아랍국가 지도자들과 대응할 수 있겠어요’라고 찔러보기도 했다. 기자들은 후보의 면전에 대고 묻기 힘든 질문들이다.
유권자들은 아마추어답게 직설적으로 물었지만 세련된 전문가인 후보들의 답변은 전과 비슷하게 별로 솔직하지 않았다. 정치평론가들이 이날 토론의 승자로 손들어 준 힐러리도 부시-클린턴-부시-클린턴으로 반복될 대물림으로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이룰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2000년에 부시를 뽑은 게 문제였다’는 유머로 민주당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남편의 업적을 칭찬하고 넘어가는데 그쳤다.
너무 직설적이고, 너무 개인적이고, 너무 아마추어적 질문들이라는 지적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래서 현실적이고, 감동적이고, 대통령 선거가 나의 일 같은 친근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날 토론에선 각후보들의 30초짜리 동영상도 소개되었다. 존 에드워즈의 동영상은 이런 자막으로 끝난다 -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선택하십시오”
선택하려면 알아야 한다. 재미있고 새로운 유튜브 토론은 ‘미국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만성 고질병을 앓고있는 많은 한인들에게도 좋은 치료약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박 록 / 주 필  한국일보 미주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