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고민

조윤성 2007.08.02 09:15 조회 수 : 2274 추천:46


장면 1
서울의 한 초대형교회 주일 대예배. 담임목사가 설교를 통해 반공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부기관 각료 중에 빨갱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친북·친공·좌파세력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목사의 목에 핏줄이 선다. 종교적 메시지가 아니라 마치 정치 연설을 듣는 것 같다. 이어 “기왕이면 예수님을 잘 믿는 (이명박)장로가 대통령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하더니 이를 위한 ‘목숨 건 금식기도’를 선포한다.

장면 2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예비후보의 자서전 출판기념회. 참석자들이 경쟁적으로 마이크를 잡는 가운데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간부목사가 연단에 올랐다. 자리에 참석한 한기총 회장을 일어나게 해 “한국기독교계의 영적 대통령”이라고 치켜 세우더니 박 후보에 대한 감언을 빼놓지 않는다. 한 원로목사가 박후보를 위해 새벽 3시면 일어나 기도하고 있다고 전한 뒤 “박 후보를 위해 새벽마다 엎드려 기도하는 목사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 달라”고 주문한다. 곳곳에서 “할렐루야”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취재기자들 사이에 ‘양박’으로 지칭된다. 이명박 후보는 뒤에 박자가 있어 편의상 ‘뒷박’으로 불리고 박근혜 후보는 ‘앞박’으로 통한다. 요즘 한국의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하나님이 ‘양박’ 사이에서 고민이 적지 않겠구나 지레 걱정이 든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골방에서 은밀히 기도 하는 차원을 넘어서 아예 선거법 위반의 위험까지 무릅쓴 채 공개석상에서 지지후보를 선언하고 그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자고 몰아대니, 하나님으로서도 누구 팔을 들어줘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겠다 싶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목회자들 간에 누구 ‘기도발’이 더 센가를 놓고 다투는 형국이 돼 버렸다. ‘뒷박의 하나님’이 되실 것인가 ‘앞박의 하나님’이 되실 것인가, 아니면 이런 ‘큰 목사님들’의 간구를 외면한 채 다른 후보를 당선시켜 ‘비박의 하나님’이 되실 것인지 자못 궁금해지기 까지 한다.
‘영적 메신저’를 자처하는 목회자들도 이 땅에서는 유권자인 만큼 참정권이 있고 지지후보를 가질 권리도 있다. 하지만 신성해야 할 강단과 목회자라는 지위를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고 자신의 세속적 입지를 다지는데 이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정치권력에 큰 영향력을 지녀 왔다는 것은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이번 주에 발표된 ‘정치와 종교에 관한 종교지도자 설문조사’에서도 정치권력에 관한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종교로 응답자의 47%가 개신교를 꼽았다. 특히 선거 때 득표에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는 종교를 묻는 질문에서는 54%가 개신교를 들었다. 교계 지도자들의 언행과 그들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당연하다 싶은 결과이다.
문제는 기독교의 이런 힘이 한국정치에서 ‘소금’으로 작용하지 못했다는데 있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사회현실에 침묵하다가 민주화로 정권의 물리력이 약해지자 과거 언제 그랬냐는 듯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행태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이다. 바뀐 입장, 달라진 태도가 설득력을 지니려면 그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반성이 선행돼야 하는데 과문한 탓인지 그런 것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1992년 김영삼 장로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1,000여명의 교역자들이 모여 “신앙인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며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들의 기도 힘 덕분인지 김 장로가 대통령이 됐지만 그의 당선으로 대한민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됐는지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기독교인이 전 국민의 1% 미만이었을 때 각료의 거의 절반을 기독교인으로 채웠던 이승만 정권의 부패상을 본다면 ‘종교’와 ‘정권의 도덕성’간에 긍정적 함수관계가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지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강단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일부 목회자들은 하나님을 대단히 편협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무엇을 해달라고 조르는 것은 초보적 수준의 기도이다. 좀 더 성숙한 기도는 이런 것이 아닐까.
“국가의 명운이 걸린 대선이 다가 옵니다. 개인적으로는 뒷박(혹은 앞박 아니면 비박)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민족과 국가를 이끌어 갈 올바른 지도자를 세워주세요. 나의 원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마이크를 잡은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정치적 발언으로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 순간에도 많은 교인들은 곳곳에서 조용히 머리 숙인 채 이런 성숙한 기도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장래가 여전히 밝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성숙의 힘’을 믿는 까닭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한국일보 미주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