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추의 한’

윤여춘 2007.08.06 08:42 조회 수 : 2416 추천:37

지난 70년대 후반 ‘600만달러의 사나이’라는 TV 드라마가 히트를 쳤다. 비행기 추락으로 불구가 된 우주인(리 메이저스 분)이 600만달러를 들인 생체공학 수술을 통해 삼손처럼 힘센 오른 팔과 주행시속 60마일의 두 다리와 적외선을 투시하는 천리안까지 갖춘 수퍼맨으로 거듭난 뒤 불퇴전의 과학수사국 요원으로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600만달러의 사나이가 좀 쩨쩨해 보인다. 요즘 그런 드라마가 있다면 아마 ‘60억달러의 사나이’라는 제목이 붙을 법하다. 바지 한 개를 분실한 세탁소 주인에게 5,4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할 만큼 지난 30여년간 인플레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요즘도 600만달러의 사나이를 자주 본다. 그의 영화나 비디오를 보는 게 아니라 세이프코 필드 등 전국 야구장을 주름잡는 그를 TV 중계를 통해 본다는 얘기다. 필자에게는 매리너스 외야수 이치로 스즈키가 600만달러의 사나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치로는 메이저스가 600만달러를 투자해 얻은 초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체격이 우리네와 비슷한 일본인인 그가 외야에서 홈으로 송구하는 볼은 빨래줄 같이 팽팽해서 중간계투가 필요 없다. 그의 타격은 마치 망원렌즈 달린 눈으로 투수의 볼을 ‘줌업’해 맞추는 듯 정확하다. 그의 다리는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올스타 경기에서 올스타 사상 처음으로 장내홈런을 기록했을 정도로 빠르다. 그는 최근 매리너스와 9천만달러에 5년간 계약을 연장했다. 메이저스 같은 600만달러 사나이를 15명이나 만들어낼 수 있는 금액이다.
랜디 존슨도, 켄 그리피 주니어도,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떠났고 에드가 마티네즈도 은퇴한 지금 매리너스의 간판선수는 단연 이치로다. 그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에 오는 일본인들이 줄을 잇는다. 엊그제는 고베의 부시장도 찾아와서 시구를 했다.
매리너스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홈구장인 세이프코 필드이다. 지난 1997년 3월 착공돼 2년여 만에 6억달러 이상의 건축비를 들여 완공한 세이프코 필드는 당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야구장으로 등장했다. I-5와 I-90 두 고속도로를 낀 다운타운에 4만7천여 명을 수용하는 스탠드와 함께 지붕이 맑은 날엔 열리고 비가 올 때는 닫히는 전천후 구장이다.
그 세이프코 필드에서 한국일보가 해마다 주최하는 ‘코리언 나이트’ 경기가 오는 14일 저녁 7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펼쳐진다. 온 가족이나 동료들이 전국 최고의 야구장에서 한여름 밤의 낭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이다. 이날은 PI뱅크의 박우성 행장이 시구를 맡고 본보와 매리너스는 이날에 한해 한인들에게 티켓을 특별 할인판매 한다.
야구와 풋볼은 미국에서 자생한 스포츠이다. 특히 야구는 미국인들이 ‘국민적 놀이(National Pastime)’로 치부할 만큼 사랑을 받는다. 9회말 2사후 홈런 한방으로 전세가 뒤집히는 지극히 미국적인 경기이다. 전국 어느 야구장에서나 7회 초가 끝나면 전통적으로 온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야구장에 날 데려다 줘요??라는 팝송을 합창하며 기분을 바꾼다.
창설된 후 꼭 30년간 월드시리즈는 물론 리그 페난트도 한번 따내지 못하고 디비전 챔프만 세 차례 차지한 매리너스가 금년 시즌에는 예상외로 잘 나가고 있다. 금주 초 디비전 선두인 막강 LA 에인절스와 맞붙어 2승1패를 거두고 격차를 3게임으로 줄였다.
한인 매리너스 팬들에겐 천추 아닌 ‘백추의 한’이 있다. 白차승과 秋신수가 끝내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치로와 함께 켄지 조지마(포수)를 매리너스에 포진시키고 있다. 몇 년 전까지 마무리 투수 카즈히로 사사키도 뛰었다. 매리너스 구단 주인이 일본 닌텐도의 미국 자회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코리안 나이트 경기에 많은 한인들이 참여해 한인 팬의 파워를 과시하는 한편 한국인 600만달러의 사나이들이 세이프코 필드를 주름잡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하자.

윤여춘(편집인)  한국일보 시애틀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