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북한제품이 없다

김형찬 2007.08.24 07:26 조회 수 : 2373 추천:32

평양의 백화점에 들러보면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를 경제적인 면에서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제1백화점과 제2백화점에는 1990년이나 2000년보다 더 많은 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학용품, 생필품, 어린이옷, 기성복, 옷감, 신발, 전자제품 등이 망라돼 있었다.
그러나, 주지해야 할 일은 이들 상품의 대다수가 중국제라는 사실이다. 북한에서 만든 상품은 좀체로 ?눈에 띄지 않았다. 2000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면 평양고려호텔에서도 북한제 운동모자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호텔은 물론 다른 호텔이나 어느 백화점에서도 북한제 모자를 볼 수 없었다. 필자가 한국과 미국의 친지들에게 선물로 줄 모자를 사려고 평양의 상점들을 헤집고 다녔으나 한개도 사지 못하고 결국 다른 물건을 살 수 밖에 없었다. 평양에서 본 모자는 모두 중국제로 나이키 로고를 달고 있었다.
북한은 지금 중국의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남한이 해방이후 1960년대 초까지 미국의 시장역할을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중국의 시장으로 변하면서 북한의 정책면에서도 두세 가지 변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북한의 중국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짐으로서 북한경제가 중국의 지배체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처지에 이르는 사태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중국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어떤 외교정책을 펼쳐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금 북한 지도층은 이들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지도층은 미국과의 원만한 핵협상 결과로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경제협조를 얻어 현재의 높은 중국의존도를 줄이고 중국 자체도 견제하는 외교정책을 표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 정책은 김일성주석이 1960년대에 소련과 중국의 분쟁을 외교적으로 잘 이용해 북한이 필요한 많은 원조물자와 외화를 얻은 것 과 유사하다. 북한은 현재 미국과 중국의 불편한 외교관계를 묘하게 이용하면서 미국과의 핵 분쟁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는 사회면에서도 볼 수 있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해외동포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에 임했다. 나는 평양을 세 번이나 방문했지만 이번처럼 호텔의 여종업원들과? 안내원없이 자유롭게 대화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대화의 본질과 흐름이 북한에서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었지만, 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였다.
필자는 해방산여관 여종업원 두명과 대화하면서 북한에서 어떤 남자가 남편감으로 제일 선호되는지 물어봤다. 그들은 지식이 많아야하고 다음에는 국가가 필요하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여러 주제를 가지고 한 시간정도 얘기를 나눴지만 그들은 거리낌 없이 자기들의 의견을 밝혔다.
특히, 그들은 남한사람들이 북한사람들보다 더 경제적으로 풍요하게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도 “일 없어요, 우리가 더 행복하니까요”라며 웃어 넘겼다. 그들이 이 호텔에서 일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사회신분이나 노동당에 대한 열성도를 ?알 수 있지만 그들은 남한이 부럽지 않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태도를 과시했다.
한국일보 시애틀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