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오면

윤여춘 2007.09.02 19:47 조회 수 : 2244 추천:29


60년대에 ‘9월이 오면(Come September)’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팔등-신미녀 지나 롤로브리지다를 연모하는 독신사장 록 허드슨이 간부회의 도중 회의록 속에 끼워둔 플레이보이 잡지를 뒤적이며 히쭉히쭉 즐거워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영화내용은 거의 잊었지만 빌리 본 악단이 연주한 경쾌한 주제가는 요즘도 즐겨 휘파람으로 분다.
9월이 오면 필자도 즐겁다. 천고마비, 등화가친, 중추가절 등 수식어를 들먹일 필요 없이 우선 첫 월요일부터 노는 날이기 때문이다. 3일은 연방공휴일인 노동절(Labor Day)이다. 오늘부터(일부 직장인들은 금요일부터) 노동절연휴가 시작됐다. 신문사도 월요일까지 쉰다. 독자들에겐 죄송하지만 화요일(4일)자 신문이 발간되지 않는다.
노동절 연휴여행은 필자에겐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덤으로 쉬는 월요일엔 대개 멀리 떨어진 산을 찾아 나선다. 작년 노동절엔 험난하기로 악명 높은 메일박스 산을 혼자 오르며 평소 신문사에서 노동(?)할 때보다 훨씬 많은 땀을 흘렸다. 재작년 노동절엔 일기불순으로 동네 공원을 산책했고, 그 전해엔 눈산의 선 라이스 코스를 등반했다.
노동절은 말 그대로 노동자를 위한 날이다. 그러나 요즘은 노동절에 노동자를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옛날처럼 퍼레이드나 불꽃놀이도 드물다. 단순히 여름을 마감하는 연휴로 더 많이 인식돼 있다. 그래서 자녀들이 개학을 맞아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캠핑이나 가족여행을 한 차례 더 즐기려는 사람들로 고속도로와 공항이 붐빈다.
노는 것도 좋지만 노동절이 ‘피의 소산’임을 되새겨볼 필요는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경제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노동력이 딸리자 자본가들이 근로자를 주7일, 하루12시간 이상 혹사시키며 착취했다. 한국 노동자들의 하와이 사탕수수밭 취업 20년 전인 1886년 5월1일 시카고 근로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이 요즘 한국의 노조 시위대처럼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경찰에 대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녀 한명과 노동자 5명이 진압군경의 발포로 사망했다. 다음날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30여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항의시위가 벌어졌는데 난데없이 폭탄이 터져 34명이 사망했다. 시위 주도자 8명이 폭동죄로 체포됐고 그중 5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폭발사고는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획책했던 것으로 7년 뒤 밝혀졌다.
이 같은 희생을 치른 총파업으로 하루 8시간 노동이 실현되자 당시 파업 진압에 연방군을 투입시켰던 그로버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파업일인 5월1일을 노동절로 정할 경우 해마다 폭동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고 사회주의운동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 이미 수년전부터 노동단체가 퍼레이드를 벌여온 9월 첫째 월요일을 연방 노동절로 택했다.
따라서 사실상 첫 노동절은 뉴욕에서 퍼레이드가 벌어진 1882년 9월5일인 셈이다. 그 후 각 주정부가 독자적으로 노동절을 법제화했다. 공장도 별로 없었던 오리건주가 놀랍게도 1887년 2월21일 전국에서 맨 먼저 노동절을 법제화했다. 연방의회는 그보다 7년 후인 1894년 6월28일에야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절로 정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노동절연휴로 시작되는 올해 9월이 필자만 즐거운 것은 아닐 것이다. 여행전문가들은 이번 연휴에 전국에서 거의 3천만명이 자동차나 항공기편으로 여행을 떠날 것으로 예상한다. 노동절이 9월 첫 월요일로 정해진 것은 독립기념일(7월4일)부터 추수감사절(11월 넷째 목요일)까지 140여일의 긴 기간 중간쯤에 별도의 공휴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도 이날은 만사 제쳐두고 밖에 나가 저물어가는 여름을 만끽하시기 바란다. 시애틀의 중추가절(仲秋佳節)은 비가 점점 많아지는 ‘중우가절(重雨加節)’이기 때문이다.
윤여춘(편집인)  한국일보 시애틀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