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자신도 돌본다는 것

 

 

  가족 중 누군가를 돌봐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까? 그런 순간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나의 아버지는 은퇴한 군인 장교였고 나와 여동생을 그의 사병들인 것처럼 대하셨다.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셨고, 우리가 그 사랑을 알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소리질러 명령을 내릴 때 외엔 말씀이 없으셨다. 엄마는 꼭 그 반대였다. 엄마는 상냥하고 조용하며 늘 기분 좋은 상태에 계셨다. 두 분은 서로를 균형 잡아 주셨다. 

 

엄마가 5년전에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는 내리막길로 접어드셨다. 처음에 우리는 아버지가 단지 외롭고 슬프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점점 더 걱정할 만한 신호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루는 구운 빵을 아버지께 가져다 드리러 방문했다. 아버지는 가운 차림으로 문까지 나오셨고 가운 앞쪽에는 토스트 조각들이 아래까지 묻어 있었다. 아버지는 면도도 하지 않으셨고 심지어 자신의 몰골이 형편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 날의 일로 인해 나와 내 여동생은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돌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내가 살아오는 내내 아버지가 항상 나를 보호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아버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 해서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그가 내 아버지가 아닌 척 대할 수 있을 때이다. 그러나 다른 때에는 아버지의 옛 자아가 빛을 발하면서 뭔가를 소리치시기도 한다. “문 닫아라, 젊은 아가씨!” 와 같은.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면도를 할 필요가 있거나 셔츠 단추를 잠궈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도와 드리기가 두렵다. 아버지가 존엄을 잃어가고 계시다는 것을 눈물 없이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되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는 이제 아버지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내가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Sue W 

 

(Donna Thomson, Zachary White.(2019) The Unexpected Journey of Caring, Rowman & littlefield, p.183) 

 

 

  부모님이 치매증상을 보이거나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갑작스럽게 우리의 역할이 바뀌어야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게 될 때나, 건강했던 자녀나 배우자가 질병이나 장애로 제대로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어져 돌봐야 하는 상태가 되면 우리는 여러가지 충격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첫째로, 사랑하는 이가 겪는 고통과 질병 및 장애, 죽음에 가까워지는 변화를 지켜보고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많은 경우, 그런 질병이나 고통을 겪는 당사자 만큼이나 그 상태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이 겪는 고통 또한 큽니다. 당장 질병이나 고통에서 구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력감과 죄책감이 강력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족 내 역할과 위치가 변화하는 것이 가져오는 혼란과 충격이 있습니다. 특히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위치로 갑자기 변화하게 될 때의 혼란, 두려움과 슬픔이 있습니다. 위의 글에서 Sue라는 여성의 고백에서 볼 수 있었듯이 말입니다.

부부나 부모 자식간에 자연스럽게 갖고 있던 관계성, 역할의 기대치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해야하는 상황의 변화를 상상해 보십시오. 내가 정성으로 키운 자식이 이제 내 떨리는 몸을 붙잡고 옷을 입혀줘야 한다면, 부부 사이에서도 지킬 수 있었던 화장실의 사생활이 깨어지고 난처해 하는 남편의 용변 뒤처리를 감당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생각해보면 돌보는 이도 돌봄을 받는 이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을 겪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섬세한 사람 간 경계의 깨어짐에 대해 마음이 무뎌지긴 하겠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소화하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빨리 정리하고 의식에서 밀어냅니다.

 

  그래서 세번째의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돌봄의 과정에서 일상은 바쁘게 흘러가고, 정서적인 혼란이 소화되지 못하면 이는 정신의 전체적 에너지를 소진시키게 됩니다.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나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억누를 때, 우리의 정신은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됩니다. 예로서, 부모가 치매를 겪거나 질병의 고통으로 인격과 태도가 변화하면 돌보는 자식은 상처가 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심적으로 약해지고 분노와 죄책감, 슬픔 사이를 오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상처를 가족 아닌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이해와 조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도덕적인 갈등과 죄책감을 일으키기 십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혼자서 해결하고 받아들이려 애씁니다. 그리고 이는 정신적 피로와 우울, 만성화된 분노 등을 유발합니다.

 

  그렇다면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자기 자신 또한 잘 돌볼 수 있을까요?

Self Reflection  먼저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겪어온 것이 무엇이고, 현재의 상태는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갖는지 객관적인 언어와 시선을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읽는 것, 그런 경험들을 많이 다루어 본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 시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Acceptance  그러면 자신의 마음 속에 갈등하는 감정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한 순간 증오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약자이면 우리는 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먼저 수용하고 깊이 이해해주면 그 힘이 줄어들면서 마음이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육체적으로도 염증이 생겨 고름이 잡힌 부위를 보이기 싫어 계속 감싸두면 공기와의 접촉이 차단되고 병증이 더 깊어지지만, 서서히 노출시키면 딱지가 앉고 새살이 빨리 자라는 이치와 같습니다.

 

   Recognition & integration of Meanings  자기 인식이 깊어지고 정신의 통합과 안정성이 커질 수록 긍정성이나 부정성에 휩쓸리지 않고 자아가 가슴 깊이 뿌리내리고 단단해지는 감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경험 속에서 좌절하기보다 성장하게 되고, 우리가 처한 상황의 의미와 인연에 대해 통찰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와 사랑하는 이가 겪는 고통, 그 고통 이면에 늘 존재했던 사랑, 우리의 독특하고 개별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통찰이 우리의 인격에 통합되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이를 돌보고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돌봄이 될 것입니다. 매일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자신의 마음상태를 성찰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이 모든 단계의 자기돌봄에서 기본이자 핵심입니다.

 

 

 

Dr. SUJIN RHI

한의사(한국(한의 신경정신과), WA), 미국 공인 정신분석가(NCPsyA)

intinst.edu@gmail.com

720.207.8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