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충동장애

purecore 2020.07.08 10:49 조회 수 : 148

강박충동장애

 

 

  프로이트는 강박충동적인 사람들은 항문기의 이슈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청결, 완고, 정확함에 집착하는 경향성은 배변 훈련의 시나리오에서 두드러지는 내용이라는 것이었지요. 물론 현재의 정신분석가들은 프로이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는 부모의 높은 기준과 기대가 강한 환경에서 강박충동적 성격의 토대가 생겨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강박충동장애 obsessive-compulsive disorder라는 용어에서 강박obsession은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말하는데, 이러한 생각과 이미지는 통제불능이며 위협적이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충격적이어서 불안을 증가시키게 됩니다. 충동compulsion은 주로 행동을 말하나 생각 또한 해당될 수 있는데, 불안을 낮추기 위해 특정 행동이나 생각을 반복하게 되고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멈출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강박충동장애란 강박충동적 성격을 갖고 있고 불안 감수성이 큰 사람에게 나타날 확률이 높지만, 불안과 충격이 강력한 상황이나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인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상황에 해당됩니다. 

 

  강박충동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높은 기준과 죄책감, 또한 취약한 수치심과 불안을 가지고 있으므로 선택이나 책임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되 끝맺음에 이르기가 힘듭니다. 정서는 차단되고,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끝없이 정서의 통제를 시도합니다.

 

  증상으로 나타나는 유형들을 보면 오염contamination을 두려워해서 씻고 피하는 유형 (cleaners and avoiders)과 남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난처함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나 끝없이 체크하는 유형 (checkers)이 있습니다. 그리고 강박충동장애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원치 않는데도 끝없이 침범하는 생각들에 시달리는 경우인데, 위해harm나 폭력violence이 일어나거나 자살을 하는 등의 생각과 이미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진씨는 저를 찾아왔을 때 30대 후반의 의사였습니다.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하나하나 다 힘들어서 이제는 견디면서 살 힘이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거대한 의무일 뿐이라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던 그녀는 우울하고 서로 간에 갈등이 많던 부모님에게는 빛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녀가 우수한 성적을 받아오는 한 부모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집안에 기쁨이 며칠씩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기쁨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독한 의무로 변해갔습니다. 중학생이 된 현진씨는 자신이 1등을 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다는 공포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2등이 되었을 때의 시나리오가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되었습니다. 그녀는 매일같이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공부했습니다. 아니, 공부를 하지 않는 상태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순간 불안을 피하려고 책읽기에 매달리다가 급기야 글이 잘 읽히지 않는 난독증이 온 것입니다. 글자가 하나씩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경험되어 문장의 의미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책 한 페이지를 이해하기 위해 몇시간을 씨름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집을 나설 때면 가스밸브가 잠겼는지, 휴지통 덮개는 제대로 덮혔는지, 필통 속에 연필과 볼펜이 순서대로 꽂혀 있는지, 책은 순서대로 놓여있는지 등 모든 것이 그녀의 생각대로 통제되도록 끝없이 맞추고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그 당시 모든 것이 시한폭탄 같은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가스밸브를 제대로 잠그지 않아서 집이 폭발할까 두려웠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언제 폭발해서 붕괴될 지 모르는 폭탄 같았습니다. 그런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그녀가 계속 통제해야 했던 것은 불안과 공포와 분노, 그리고 깊은 우울이었습니다.

 

  불안을 차단하거나 회피하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답을 찾거나 불안한 생각들을 억지로 누르고 반복적인 행동을 취하다 보면 불쑥불쑥 머릿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생각의 위협성도 더 커집니다. 강박장애 환자분 중 한 분은 “조깅할 때 내가 앞에서 뛰어오는 사람을 주먹으로 쳐서 죽여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겁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전혀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며 대인 관계에서도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닌 “강박적 사고”인 것입니다.

 

  현진씨의 경우도 불안을 해결하려고 억지로 공부를 할 수록 불안이 더 증폭되는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아 가스가 새어나와 집이 폭발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학교에서도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뚜껑이 있거나 잠그는 것들은 모두 불안을 불러일으켜서 끝없이 점검해야만 했고, 현진씨는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들을 “생각”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그 생각들에 과감히 자신을 더 노출시키는 전환이야말로 증상을 감소시키는 첫 단계가 됩니다. 씻고 체크하는 행동들도 “불안하지 않을 때까지 한정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멈추는 훈련을 계속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안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고 생각과 행동의 반복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현진씨는 강박적 고통을 겪은 시간이 길었던 만큼 누적된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자신을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함께 작업하면서 빠르게 증상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보다 근본적 성격 형성에 대한 분석적 작업은 긴 시간을 두고 계속되었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엄격한 기준과 기대, 거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점철된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어서 현재의 자신의 삶을 철저히 황폐하게 하는데 이르렀는지를 통찰하면서, 보다 유연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경험하고 여러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Face the ultimate fear. 가장 두려운 것을 오히려 드러내고 직면할 수 있는 과정이 강박충동장애 치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강박적 생각과 행동 이면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에서 맥락을 찾아가는 것은 치료과정이 인격의 확장과 함께 견고하게 자리잡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Dr. SUJIN RHI

한의사(한국(한의 신경정신과), WA), 미국 공인 정신분석가(NCPsyA)

intinst.edu@gmail.com

720.207.8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