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에 대하여

purecore 2020.09.27 19:18 조회 수 : 174

자폐증에 대하여

 

 

  “얼음처럼 차가운 엄마Refrigerator Mother” –  1940년대 중반에 미국의 정신과 의사였던 레오 캐너Leo Kanner박사와 헝가리의 심리치료사였던 브루토 베텔하임 Bruno Bettleheim은 아이의 자폐증은 정서적으로 냉담한 엄마의 양육에 대한 방어적인 반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은 이후 이삼십 년간 정신의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자폐아를 가진 부모들의 마음에 상처와 죄책감을 남기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를 향한 비난에 대한 반작용이 만만치 않게 커지면서1980년대 이후로는 자폐증의 신경생리학적 요인이 부각되었습니다. 현재는 유전적인 신경생리학적 원인과 환경적, 심리적 원인이 함께 작용하여 신경 체계의 적응성을 손상시켜 자폐증을 일으킨다고 설명합니다.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이유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자폐증의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폐증은 최근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ASD)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각한 자폐증Autism에서부터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과 광범위한 발달장애 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PDD)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포괄해서 장애로 명칭한 것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에서 보여지는 발달상의 손상impairment은 세 가지 영역으로 집약됩니다. 즉, 감각운동계 통합의 장애dysfunction in sensorimotor integration, 사회적 관계 social relationships와 사회적 소통social communication 발달의 손상입니다. 

 

  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아이들이나 성인들은 동시에 여러 감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운동계의 기능이 섬세하게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가까운 사람에게 다가가고 안고 안기는 기본적 관계 맺음에 위축과 수동성을 가져오고  의사 소통을 제한시키는 큰 요인이 됩니다. 자폐를 겪는 아기들은 처음부터 언어발달이 지연되거나 생후 몇 달 만에 옹알이를 하다가 멈추게 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감정 조절의 문제를 보이고 눈 맞춤이 없거나 회피하며, 혼자 있기를  선호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접촉하면 뻣뻣해지고 접촉을 싫어하는태도를 보입니다. 또한 자신을 진정시키거나 self-soothing 혹은 자신을 다치게 하는 self-injurious 반복적인 행동 패턴 restricted and repeated patterns of behavior 으로도 이어집니다.

이러한 증상들의 내용을 보면 왜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이 많은 질환 중에서도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리도 절망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성장하면서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삶, 상상과 기대 속에 살아있었던 아이가 마치 죽어버린 듯한 충격을 받는 것입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프랜시스 터스틴은 이와 같이 자폐를 겪는 아이들과 그 부모를 함께 이해하고 분석하면서 자폐증 치료에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치료 경험이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집중되어 있지만 오히려 현대의 우리에게 그녀의 경험은 자폐증의 심리적 원인과 해결책을 보다 깊은 지혜로 알려줍니다.

그녀는 자신이 성공적으로 치료한 아이들의 경우 자폐증으로 명확히 진단받았으면서도 뇌신경학적 원인보다는 심리적 원인이 컸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녀가 치료한 아이들의 많은 경우 엄마가 우울했는데, 특히 아이의 출생 전과 직후에 심했습니다. 여러 이유로 인해 남편으로부터 적절한 심리적, 물질적 지원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엄마로서의 확신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또 아기들도 매우 민감한 기질을 가졌으며 엄마의 우울에 깊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울한 상태로 아기와 엄마가 서로를 채워주는 존재가 되었고 이러한 관계성은 출생 전부터 시작되어 아기가 모태 밖으로 나오게 되면 엄마는 자신의 몸에서 중요한 부분을 상실하는 것으로 경험하였다고 프랜시스는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치료한 아이들 중 한 남자아이의 사례를 봅시다. 존 John은 당시 세 살이었고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일 년의 치료 과정 후 말을 시작했고, 처음 뱉은 단어는 “부서졌어broken!” 였습니다. 얼마 지나서는 “없어졌어 gone! 부서졌어 broken! 어떡해 Oh dear!”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인상적이게도 프랜시스는 자신이 치료한 다른 자폐아동들도 이러한 단어들을 잘 쓰곤 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프랜시스는 존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존을 관찰하며 계속 치료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은 엄마의 친구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보고는 프랜시스에게 왔을 때  “빨간 버튼이 가슴에서 자라요.”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존은 그 빨간 버튼이 자신의 혀에 붙어있었는데 갑자기 떨어져 나가버려서 너무 무섭고 화가 났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존은 빨간버튼이 떨어져 나간 이후로 자신에게 검은 구멍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존은 엄마의 젖꼭지가 자신의 몸과 하나라고 느꼈는데 어느 순간 젖꼭지가 떨어져 나가 사라져 버려서 검은 구멍이라는 무서운 것이 자신에게 남겨졌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해 언어적 수단을 동원한 것이었습니다.

 

  프랜시스는 존이 하는 말과  다른 아이들과의 경험을 취합하면서 자폐 아동이 겪는 심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폐아동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육체적, 심리적으로 훨씬 취약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있기에 엄마로부터의 분리가 매우 갑작스럽고 두려운 경험이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부서지거나 몸의 부분들이 떨어져나가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엄청난 두려움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캡슐과 같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외부의 위험과 분리된 상태로 들어가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강력한 필요를 갖게 된 것입니다. 

프랜시스는 자폐증상이 갖는 이 “보호적 목적 protective purpose”을 염두에 둔다면 현대의 자폐증 치료에서 증상을 없애려고 약물 치료 등을 시행할 때 신중해야 하지 않을지 우려 섞인 질문을 던집니다.

 

  자폐증은 함께 살아가는 가족에게 유난히 큰 상실감과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자폐를 앓는 당사자인 아이나 성인들에게도,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외부 세상을 향한 공포가 크게 자리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의 자폐증 치료는 최대한 조기 치료를 강조하며 약물 치료, 언어 치료, 작업 치료와 행동 치료를 병행하는 추세입니다. 그 중에서도 심리적 소인이 큰 자폐증의 경우 자폐증 자체가 외부에 대한 공포로부터 아이들 스스로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프랜시스 터스틴의 말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치료에서 보다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태도와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Dr. SUJIN RHI

한의사(한국(한의 신경정신과), WA), 미국 공인 정신분석가(NCPsyA)

intinst.edu@gmail.com

720.207.8365